| 한글 | 김생 |
|---|---|
| 한자 | 金生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김생사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711년 |
| 입적 | 791년경 |
통일신라 시대의 명필
8세기에 활동했던 신라의 명필로, 자는 지서(知瑞)이고 별명은 구(玖)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글씨에 재능이 뛰어나서 일생을 서예에 바쳤다. 일찍이 경주 격일봉 석굴에 들어가 나뭇잎을 따서 글자를 쓰면서 40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글씨가 신묘한 경지에 통하게 되어 예서·행서·초서에 능하여 해동의 서성(書聖)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충청도 충주목 조의 사찰 항목에 따르면 김생은 충주의 김생사(金生寺)와 관련이 있다. 이에 따르면 “김생은 신라 사람이고, 글씨를 잘 쓰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불교를 좋아하여 불도를 닦느라 이 절에 와서 기거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김생사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證東國輿地勝覽)』에는 김생의 세계(世系)는 알지 못하며, 숭녕(崇寧) 연간에 고려 학사(學士)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에 들어갔을 때 한림 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왕희지의 진적(眞蹟)으로 알고 김생 글씨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김생사는 김생이 두타행을 닦으며 머문 절로 소개하였다.
필적으로는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 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 「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 등이 전한다. 김생이 남긴 글씨가 불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양자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우리 동국의 필법(筆法)은 김생(金生)이 제일이고, 요학사(姚學士: 姚克一)와 승려 탄연(坦然), 영업(靈業)이 둘째가 되는데 모두 우군(右軍) 왕희지(王羲之)를 본받았다.”라고 하였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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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석씨(釋氏)께서 태어나기는 동방에서 출현하지 않으셨지만 멸도하신 후 그 법은 신라에서 비로소 대성하였고, 그를 따랐던 무리인 저 화쟁 국사 원효(元曉)와 의상(義湘), 김생(金生), 자장(慈藏) 같은 분들이 서로 계승하여 가람과 선찰을 건립하고 안개와 넝쿨, 달과 노송나무, 옥탑과 단청이 곳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석씨가 먼저 그 기운을 얻어 크게 소리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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