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몽암 기영 |
|---|---|
| 한자 | 蒙庵箕穎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사산비명, 해운비명주, 몽암대사문집 |
| 시대 | 조선 후기(18세기) |
| 출생 | 1728년(영조 4) 이후 |
| 입적 | 1793년(정조 17) 이후 |
| 호 | 몽암(蒙庵) |
| 탑소재지 | 완주 송광사 |
18세기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한 승려
1700년대 지리산 일원의 사찰에서 활동하며 『몽암대사문집(夢庵大師文集)』과 『해운비명주(海雲碑銘註)』를 저술한 승려이다.
문집에도 행장이 수록되지 않아 몽암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시문을 통해 약간의 추정이 가능하다. 1791년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이 입적하여 자신이 산문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편지(「上宋南原書)」,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1)에게 올린 두 편의 편지, 해인사의 해봉 유기(海峰有璣, 1707~1785)에게 올린 편지(「上海峰法老有機書」),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에게 올린 편지 등이다.
출생 연도는 영파 성규의 출생 연도인 1728년 이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문집 후반부에 있는 「수성대중수기(水聲臺重修記)」에서 “계축년(1793, 정조 17) 봄에 내가 병이 위중하여 문을 닫아걸고 드러누운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몽암은 1728년 이후에 출생하여 1793년 이후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 지역은 두류산(지리산) 인근이다. 몽암의 법사(法師)인 설파 상언은 함양 영원사에서 입적했는데, 몽암 또한 그곳과 인연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치원의 사산비명에 주해를 단 『해운비명주』(1783년)는 구례 화엄사에서 저술하였고, 몽암이 서문을 쓴 『지장보살본원경』은 1797년(정조 21) 함양 벽송암에서 간행되었다. 이를 보아 대사는 지리산 권역의 벽송사, 영원사, 화엄사 등지에서 주석하며 저술 활동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문집에 실린 시문은 소동파의 시와 『장자』를 즐겨 인용한 점이 특징이다. 당대의 여러 대덕과 주고받은 시문을 통해 18세기 불교 지성의 소통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해운비명주』는 최치원의 『사산비명』 원문에 주해를 달아 놓은 주석서인데, 몽암의 주석서는 경운 원기, 박한영 등 대강백이 연이어 주석서를 펴낸 계기가 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학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