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명연 |
|---|---|
| 한자 | 明衍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염불보권문, 상봉 정원 |
| 시대 | 조선 후기(17, 18세기) |
| 출생 | 17세기 후기 |
| 입적 | 18세기 전기 |
조선 후기 예천 용문사에서 『염불보권문』을 펴낸 승려
17세기 후기에서 18세기 전기에 걸쳐 활동한 예천 용문사의 승려이다. 명연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04년에 용문사에서 간행한 염불서 『염불보권문』이 유일하다. 명연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청허(淸虛)의 후예임을 밝히면서 염불로 극락왕생을 권유하고자 하는 간행 의도를 소개하였다. 또 이 책에는 상봉 정원(霜峰淨源, 1627~1709)이 쓴 발문이 있는데, 여기에 명연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용문산은 영남의 큰 땅일 뿐만 아니라 역시 한 나라의 명산이다. 이 산에 대사가 계시니 법명이 명연인데, 이 세상에 드문 스님이다. 일찍이 정성으로 감로의 문으로 드시고 유유히 스스로 제호의 본성을 증득하셨으니, 선원(禪苑)의 목탁(木鐸)이고 교해(敎海)의 빈랑(檳楖)이시다.”라고 하였다. 빈랑은 상록교목으로 우뚝 서 있는 큰 나무로서 대사의 위상을 비유한 것이다.
상봉은 청허 휴정의 4대 법손으로 법맥이 청허 휴정(1520~1604)-편양 언기(1581~1644)-풍담 의심(1592~1665)-상봉 정원으로 이어진다. 당대의 강백으로 손꼽히는 상봉 정원이 ‘교해의 빈랑’으로 평가할 만큼 명연의 위상이 높았음을 인정할 수 있다.
『염불보권문』이 18세기 100년간 전국의 사찰에서 간행되며 염불신앙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명연은 한국불교사에서 18세기 염불신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한 저술가요 사상가로 평가할 만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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