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말계 지은 |
|---|---|
| 한자 | 末繼智訔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적멸시중론, 기우목동가 |
| 시대 | 조선 전기(15세기)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호 | 말계(末繼) |
조선 전기 적멸시중론을 저술한 고승
조선 초 세조, 성종 대에 활동하면서 『적멸시중론(寂滅示衆論)』을 저술한 승려이다. 생애와 불교계 활동, 그리고 법맥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대사의 저술에서 나옹 혜근(懶翁惠勤)의 설과 지공(指空) 화상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옹의 법계를 이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술로는 『적멸시중론(寂滅示衆論)』이 있는데, 논설의 주제를 시로 형상화한 경기체가 작품 「기우목동가(騎牛牧童歌)」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적멸시중론』은 공(空)과 적멸(寂滅), 무상(無相)을 논한 후, 후학들에게 선정을 닦고 나서 경론을 보아야 하며, 법이 공함을 한 생각으로 깨친다면 도를 이룰 것이라 설파한 논설이다. 여기에 담긴 사상은, 나옹이 원대(元代) 임제종풍(臨濟宗風)의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한 것과 달리, 보조 지눌(普照知訥) 선의 핵심 개념인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에 가깝다. 말계의 선 사상은 보조선의 돈오점수설에 매우 가까운 것이기는 하나, 대사는 그것을 다시 중생 구제의 방향으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481년(성종 12) 치악산 상원암에서 간행한 『적멸시중론』의 마지막 장에는 증명(證明)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 덕원군(德源君),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 정현조(鄭顯祖),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수온(金守溫) 등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대사가 당시 왕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불교계에서의 위상도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함께 실린 김수온의 게송에 “지은 스님 학문은 명사 중에 빼어났고, 치악산 띠풀 암자 십 년을 은거했네”라고 하였고, 대사의 임종게에는 “어리석고 못나서 시류를 따르지 않고, 원주 치악산에 숨어서만 살았네”라고 한 대목이 있다. 입적하기 전 10년간 치악산의 상원암에서 주석했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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