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동명 선지 |
|---|---|
| 한자 | 東溟善知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동명유고』 |
| 시대 | 조선 후기(19세기) |
| 출생 | 1839년(헌종 5) |
| 입적 | 1889년(고종 26) |
| 호 | 동명(東溟) |
19세기 송광사, 청계사에서 주석하며 문집 『동명유고』를 남긴 승려
19세기에 송광사에서 주로 머물며 용운 처익(龍雲處益, 1813~1888)의 법맥을 이어 후학을 기르다가 광주 청계사에서 입적한 승려이다.
법명은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문집 『동명유고(東溟遺稿)』(필사본)에는 표지나 본문 첫 장에 저자명이 제시되지 않았는데, 본문 「천태암중수화문(天台菴重修化文)」에 동명 선지(東溟善知)라고 부기되어 있다. 그런데 송광사의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이 기술한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에는 동명 지선(東溟智宣)으로 소개되었다.
속성은 김씨, 아버지의 이름은 생석(生石), 어머니는 박씨다. 1839년(헌종 5) 태어나 어렸을 때 신동으로 소문이 났으나 8세에 아버지를, 9세에 어머니를 잃고 편안한 거처 없이 지냈다. 그럼에도 동네 노인들의 도움으로 13세에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읽었고, 문장과 시 짓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14세인 1852년(철종 3) 조계산에 가서 계월(桂月)에게 참례하여 득도(得度)하였고, 운계(雲桂)에게 계를 받았다. 16세에는 우담 홍기(優曇洪基, 1822~1881)의 강단에 나아가 경전을 배웠고, 함명 태선(函溟太先, 1824~1902), 설두 유형(雪竇有炯, 1824~1889), 용호(龍湖) 등 대종장(大宗匠)을 찾아가 배웠다.
23세 때인 1861년(철종 12) 봄 조계산 보조암에서 건당(建幢)을 하였고 용운 처익에게 의발을 전수받은 후 개당(開堂)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운수납자로서 전국의 명승지와 도력 높은 분을 찾아 법거량을 하면서 교화를 펼쳤는데, 여러 진신(搢紳)과도 시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때 대사가 남긴 명구로 “사람이 헤어져 10년이 지나면 옛 모습이 없어지는데, 춘삼월이 돌아오면 꽃은 늘 새로운 얼굴을 내보이네(人別十年無舊樣 花逢三月慣新顏)”라는 구가 있다.
대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한양 가까이 주석하며 남한산성, 북한산성 등지를 두루 돌아다녔고, 마침내 광주(廣州) 청계사(淸溪寺)를 마지막 주석처로 삼자 궁궐의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대사는 1889년(고종 26) 3월 5일 입적하였다. 세수는 51세, 법랍은 37년이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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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조계종사 동명 선사전曹溪宗師東溟禪師傳 휘는 지선智宣이고 호는 동명東溟이며 속성은 김金씨로서 가락국의 왕족이다. 아버지 이름은 생석生石이고 어머니는 박朴씨이다. 도광 19년【헌종 5년(1839)】 을해년 정월 15일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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