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김시습 |
|---|---|
| 한자 | 金時習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화엄법계도주병서, 십현담요해, 조동오위요해, 연경별찬, 화엄석제, 매월당집, 금오신화, 남산(경주) |
| 시대 | 조선 전기 |
| 출생 | 1435년(세종 17) |
| 입적 | 1493년(성종 24) |
| 호 | 설잠(雪岑),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 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 |
| 시호 | 청간(淸簡) |
조선 전기 유불을 포괄하여 탁월한 저술을 남긴 사상가, 승려
조선 전기 단종 양위에 반발하여 승려의 길을 택한 자유분방한 지식인이자, 시문(詩文)에 능한 것은 물론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문인이자, 유교와 불교에 걸쳐 깊이 있는 사상을 전개한 사상가이다.
1435년(세종 17)에 한양 명륜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으로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 어머니는 선사(仙槎) 장(張)씨다. 5세 때 세종의 어전에서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지어 시재를 인정받고 비단을 하사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하여 알려진 별호가 오세동자(五歲童子)이다. 15세에 모친상을 당하였고, 18세에는 송광사에서 불교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21세 때인 1455년(세조 1),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던 중 단종이 폐위되자 서책을 태우고 승려가 되었다.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하였고, 이후 관서·관동·호남을 다니며 시문을 남겼다.
29세 때인 1463년(세조 9) 가을, 잠시 한양에 들렀다가 효령대군의 권유로 세조의 『묘법연화경』 언해 사업을 도와 열흘 동안 내불당에서 교정 일을 맡아 보았다. 31세 때인 1465년(세조 11)에는 효령대군의 초청으로 원각사 낙성회에 참석하여 찬시(讚詩)를 지었다. 그해 봄 정치 현실에 불만을 품고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지어 머물렀는데, 호를 매월당(梅月堂)이라 하며 집필에 몰두하였다. 이 해에 용장사(茸長寺) 매월당 서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
33세 때인 1467년(세조 13세),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 낙성식에 참여하였고, 경주 금오산과 울진 성류굴에 머물렀다. 37세 때인 1471년(성종 2)에는 한양으로 올라와 성동(城東) 폭천정사, 수락산 수락정사 등지에서 10여 년을 머물렀다. 1475년 폭천정사에서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지었고, 1476년에는 『대화엄법계도주병서(大華嚴法界圖註幷序)』를 지었다.
47세 때인 1481년(성종 12)에 환속하여 결혼했으나 부인상을 당하였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1483년에 출가한 후 삼각산 중흥사, 설악산 등을 전전하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운수 행각을 벌이던 김시습은 1493년(성종 24)에 59세의 나이로 홍산현(현 부여) 무량사(無量寺)에서 입적하였다.
설잠은 유불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대사상가로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불서로는 『대화엄법계도주병서』, 『십현담요해』(1475),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 『연경별찬(蓮經別讚)』(1524), 『화엄석제(華嚴釋題)』(1524) 등이 있다. 문집으로는 『매월당집(梅月堂集)』(1583)이 있으며, 문집에서 불교 관련 시문을 모은 『매월당전집불교관계시문초(梅月堂全集佛敎關係詩文抄)』가 『한국불교전서』에 실려 있다. 전국을 유람하며 남긴 시를 모은 기행 시집으로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과 그 별집(別集)이 있다. 여기에 「유관서록(遊關西錄)」, 「유관동록(遊關東錄)」, 「유호남록(遊湖南錄)」, 「유금오록(遊金鰲錄)」이 수록되어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