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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법견

한글기암 법견
한자奇巖法堅
유형인물
키워드기암집, 의승군
시대조선 중기
출생1552년(명종 7)
입적1634년(인조 12)
기암(奇巖)
임진왜란 때 의승군으로 참여한 고승
조선 중기에 스승인 휴정(休靜, 1520~1604)과 사형인 유정(惟政, 1544~1610)을 도와 의승군(義僧軍)으로 참전하였고, 문장에 능하여 문집 『기암집(奇巖集)』을 남긴 승려이다.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찬술한 「고성 유점사 기암당 법견 대사 비문」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속성은 부안 김씨, 부친의 휘는 억세(億世)이다. 12세에 성관(性寬)을 스승으로 삼고, 14세에 구름처럼 떠돌다가 뇌묵(雷默)에게 예를 갖추었다. 불경에 관통하였고 제자백가서, 역사서 등을 섭렵하여 지식이 풍부했다. 그러나 대사는 이것이 세간의 법이지 출세간의 법이 아니라고 하며 출세간의 법을 찾아 떠났다. 휴정이 남악(지리산)에서 법당을 열었을 때 찾아가 인증을 구하여 깨우쳤고, 유정의 설법 자리에 참석하여 진리를 체득하였다. 이후 청허당과 사명당의 자취가 남아 있는 금강산 백련사(白蓮社)에 주석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휴정, 유정, 처영(處英)과 함께 참전하였다. 대사는 1594년에는 요충지인 장성 입암산성(笠巖山城)을 수축하는 감독을 맡았다. 기암은 휴정과 처영의 제자이며 유정과는 법형제 사이가 된다. 이 세 분은 임란 시기 삼화상(三和尙)으로 후대에 존숭받았는데, 이들과 함께 기암의 진영 역시 밀양 표충사에 모셔져 있다. 『승정원일기』(인조 7년 5월 6일) 기록에 ‘유정의 제자 중에 법견과 태능(太能)이 있는데, 모두 글을 잘 짓고 시를 잘하므로 왜로 들여보내 (중략) 통신사(通信使)로 보내자’라는 신하들의 건의가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1634년(인조 12) 9월 “만법이 모두 공하니 나는 가겠노라.” 하고 대중에게 게를 남긴 다음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입적 후 유점사 서쪽 기슭에 비와 석종(石鐘)을 세웠다. 문집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시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금강산에 주석할 때 교유를 나눈 인물 중에 신익성(申翊聖, 1588~1644), 이식(李植, 1584~1647),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등장한다. 권1에는 유정이 일본에 갈 때 보낸 시, 권2에는 휴정과 유정 그리고 모친의 재를 지내며 올린 소문(疏文), 권3에는 「임진년 강화부 총통과 탄자 주조 권선문」 그리고 유점사·장안사·표훈사 중창 모연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관련자료

  • 기암집
    도서 기암 법견, 이상현 역 |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1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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