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기성 쾌선 |
|---|---|
| 한자 | 箕城快善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청택법보은문, 염불환향곡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93년(숙종 19) |
| 입적 | 1764년(영조 40) |
| 호 | 기성(箕城) |
| 탑 소재지 | 유점사 |
| 비 소재지 | 유점사 |
18세기 동화사에 주석하면서 선, 교, 염불을 겸수한 승려
18세기 동화사에 주석하며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과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을 저술한 승려이다. 사상적으로 염불문의 입장에서 선과 교를 아우른 것으로 평가된다.
1693년(숙종 19)에 경북 칠곡부에서 동지중추부사인 유시흥(柳時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창원 황씨이다. 1705년(13세)에 팔공산 송림사(松林寺)에 입산하였고, 1706년(14세)에 민식(敏湜) 화상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1708년(16세)에 서귀 대사(西歸大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도덕산(道德山) 대조 선사(大照禪師)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낙빈 홍제(洛濱弘濟)에게 설강(設講)하였다. 1717년(25세)에 낙빈 대사에게 인찬(印贊)과 의발을 전수받고 당에 올랐다.
하루는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인연은 적멸로 돌아가나니 어찌 끝내 구구한 설법을 하겠느냐. 그대들은 모두 돌아가라. 내 다시는 강설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1740년(48세)에 동지(同志) 30인과 함께 은해사 골짜기에 기기암(寄寄庵)을 짓고 결사(結社)를 맺었다. 1743년(51세)에 동화사 부도암 골짜기에 초막을 짓고 『화엄경』 80권을 읽고 또 읽었으며, 밤에는 가부좌한 채 묵회선정(黙會禪定)하며 한밤중에 팔을 굽혀 옷을 입은 채 잠을 잤다.
1763년(71세)에는 팔공산에 귀임하였다. 1764년(72세) 선본사(禪本寺)에 가서 목암(牧庵) 장로의 병을 묻고, 평소처럼 『열반경』을 강설하고 이튿날 병 없이 입적하였다. 세수 72세, 법랍 59년이다. 탑을 동화사 상봉 대사 부도 아래에 세웠다.
법맥은 청허 휴정-편양 언기-풍담 의심(1592~1665)-상봉 정원(1627~1709)-낙빈 홍제(1656~1730)-기성 쾌선으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에 가장 번성했던 청허계 편양파에 속한다.
대사의 저술 『청택법보은문』과 『염불환향곡』은 이 땅에 전승되는 불교의 정체성과 대사가 살았던 시대적 고민을 담아낸 저술로서 의의가 크다. 이 외에 「팔공산동화사사적기 서」(1732), 동화사본 『아미타경』 서문(1753)이 남아 있다. 편저로는 『염불보권문』(동화사본, 1764)이 있는데 이 책은 조선 후기 염불신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어 불교문화사적 의의가 크다.
필법에도 뛰어나 준건(遵健)하고 물이 흐르는 듯한 필치로 여러 절에 글씨를 남겼다. 현재 남아 있는 글씨는 대구 동화사 대웅전·봉서루·팔공산동화사봉황문, 영천 은해사 극락전, 대구 북지장사 대웅전, 성주 선석사 대웅전, 창원 성주사 대웅전 편액 등이다. 동화사의 팔공산동화사봉황문 편액은 절의 중창에 관여했던 기성이 1744년에 쓴 것으로서, 가로획을 굵게 세로획을 가늘게,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무겁게 쓰는 동국진체(東國眞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기성은 선 수행뿐만 아니라 화엄 정토를 비롯한 불교 교학에도 달통했던 인물로서,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포교와 수행에 대해 고민한 선사로 평가된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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