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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암 사성

한글극암 사성
한자克庵師誠
유형인물
키워드극암집, 혼원집
시대조선 말기, 근대
출생1836년
입적1910년
극암(克庵), 연사(蓮史), 금거(琴居)
탑 소재지송광사
비 소재지송광사
조선 말과 근대에 파계사에 주석한 승려
조선 말에서 근대 초까지 팔공산 권역 파계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영남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승려이다. 문집 『극암집(克庵集)』에 실린 대사의 「세가자서(世家自敍)」, 법손 석응 달현(石應達玄)이 쓴 「가장(家狀)」에 행적이 담겨 있다. 속성은 서(徐)씨, 본관은 달성이다. 자호를 극암(克庵)이라 하였는데, 이는 자기 사욕을 없애 버린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부친의 휘는 영간(榮榦), 모친은 전주 이씨 두표(斗杓)의 따님이다. 1836년(헌종 2) 정월 27일 옥산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9세에 입학하였으나 배움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14세에 모친도 돌아가셨다. 이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 16세에 산에 들어가 삭발하고 학암(學巖)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고, 하은(霞隱) 화상에게 법을 받았으며, 혼허(混虛) 화상에게 불경을 배우고, 만파(萬波) 화상에게 글씨[筆學]를 배웠다. 대사에게 학암은 은사, 혼허는 경사(經師), 만파는 필사(筆師)가 된다. 대사는 스스로 청허계 편양파 계보를 이은 것으로 소개하였다. 대사는 대장경을 빠짐없이 열람하고 남은 힘으로 유학서도 공부하여 경전과 역사서, 여러 사상가의 책을 널리 읽어 통달했다. 종종 관리나 선비들과 시를 주고받아 명성이 영남 지역에 널리 퍼졌다. 대사는 1910년 11월 30일에 팔공산 파계사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75세, 법랍 60년이다. 입적 후 제자들이 글을 모아 문집 『극암집』(목활자본, 1911)을 펴냈다. 입적 후에 근대잡지 『불교진흥회월보』 6호(1915.8)에 한시 3수가 수록되었다. 상좌로 혼원 세환(混元世煥, 1853~1889)이 있었으나 스승보다 앞서 입적하였다. 제자 혼원의 문집으로 『혼원집』이 전한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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