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괄허 취여 |
|---|---|
| 한자 | 括虛取如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괄허집, 김룡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20년(숙종 46) |
| 입적 | 1789년(정조 13) |
| 호 | 괄허(括虛) |
18세기에 문경, 상주 일원의 사찰에서 주석한 승려
18세기에 문경 상주 일원의 사찰에 주석하며 지역 문인들과 교유하였고 다양한 시체의 한시와 사찰 중창불사(重創佛事) 기문(記文)을 수록한 『괄허집(括虛集)』을 남겼다. 생애는 야산 명원(野山明遠)이 쓴 「괄허대화상행장」과 서문, 발문을 근거로 파악할 수 있다.
속성은 여(余)씨이고 본관은 의령이다. 부친의 휘는 일정(日正), 모친은 안동 권씨. 1720년(경종 1)에 용궁현(龍宮縣) 송동리(松洞里: 현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에서 태어났다. 대사의 집안은 양반의 가문이었으며, 출가 전에 경사자집(經史子集)에 걸쳐 한문 교육을 받았고, 13세에 문경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로 출가하여 능파 조사(凌波祖師)에게 머리를 깎고 진곡 선사(眞谷禪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계율을 잘 지켰으며, 교학을 이수할 때 가르치는 스승들이 모두 칭찬하여 불법(佛法)의 대들보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대사는 환암(幻庵) 장로에게 선법을 전수받았고, 환응 선사(喚應禪師)에게 의발을 전수받았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으로부터는 10세, 환성 지안(喚惺志安)으로부터는 6세손이 된다.
대사는 이후 영남의 여러 사찰을 다 편력하며 여러 제자에게 가르침을 폈고, 폐허가 된 사찰을 일으켜 세우고 무너진 기강을 떨쳐 일으켰는데 상주의 남장사(南長寺), 문경의 운봉사(雲峯寺, 현 김룡사)에 주로 주석하였다.
정조 연간에 김룡사의 양진암에 방장으로 주석하다가 1789년 4월 15일에 입적게(入寂偈) 두 수를 지은 후 입적하였다. 세수 70세, 법랍 57년이다.
『괄허집』 권1에는 사(辭) 3편, 고시 7편, 오언절구 23편, 칠언절구 46편, 오언율시 19편, 칠언율시 26편 등 12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① 삶에 대한 관조나 수행의 내면을 담은 시(「忌多路」, 「失路」), ② 사상적 경향을 담은 시(「一圓相」, 「念佛」), ③ 도반들과 주고받은 시, ④ 정범조, 권상일, 권섭 등 유학자와 주고받은 시, ⑤ 명승지(금강산, 안동 주변 사찰 등)를 노래한 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권2에는 30편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임명안(任命案) 서문 2편, 계안(契案) 서문 1편, 중수기 등 기(記) 14편, 제문 1편, 상량문 2편, 권선문 3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중수기를 비롯한 기문에는 대사가 주석했던 문경(상주, 예천) 일원의 사찰 중건의 역사가 주로 담겨 있다.
『괄허집』은 18세기 문경, 상주 일원 사찰 중창의 현장을 미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또 제자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제문(「祭弟子影虛文」)이나 자신의 호를 제목으로 한 설(「括虛說」)에 이르면 인간적 향기와 평생 지향했던 수행인의 고원한 인생관, 세계관을 살펴볼 수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