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계파 성능 |
|---|---|
| 한자 | 桂坡聖能(桂坡性能)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화엄사 장륙전, 벽암 각성, 자기문절차조열, 자기산보문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호 | 계파(桂坡) |
조선 중기에 활동한 화엄사 승려
17세기 후기에서 18세기 중기까지 활동한 조선 중기 승려이다.
경상도 안동, 예천에 있는 학가산(鶴駕山)에서 출가하였고, 지리산 화엄사의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문하에서 3년 동안 수행하여 도를 이루었다. 벽암 각성은 남한산성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하고 승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전국 사찰의 중건불사(重建佛事)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화엄사 전각의 경우 1630년(인조 8)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때 화엄사의 요청으로 각성이 공역을 주관하여 1636년 완공하였다.
화엄사 출신인 계파 성능은 스승의 중건불사를 계승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륙전 복원을 주관하였다. 1699년부터 1702년까지 4년간의 공역 끝에 2층 70칸의 장륙전이 조성되었다. 이 불사에 숙종은 내탕금(內帑金)을 내렸고, 숙빈 최씨도 동참하여 후에 연잉군(延礽君, 영조)의 원당으로 삼았다. 숙종은 장륙전에 사액을 내려 각황전(覺皇殿)이라 하였다. 계파 성능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형성된, 화엄사 각황전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1711년(숙종 37)에는 팔도도총섭이 되어 한양 수비의 요충인 북한산성을 9개월 만에 축성하였다. 다시 화엄사로 돌아온 그는 수행의 여가에 「산성기사(山城紀事)」를 집필하였고, 1745년(영조 21) 도총섭 직책을 서윤(瑞胤)에게 인계할 때 『북한지(北漢志)』를 간행하였다.
1750년(영조 26)에는 통도사로 옮겨 계단탑(戒壇塔)을 증축하고 「석가여래영골사리탑비(釋迦如來靈骨舍利塔碑)」를 세웠다. 계보는 부휴계로서 부용 영관-부휴 선수-벽암 각성-취미 수초-백암 성총-계파 성능으로 이어진다.
편저에 『자기문절차조열(仔夔文節次條列)』 1권과 『북한지』 1권이 있다. 전자는 1724년(경종 4) 합천 해인사에서 간행한 의례서[초판 1568년(선조 1), 광흥사본]인데 수륙재(水陸齋) 진행의 대본이 되는 『자기산보문(仔夔刪補文)』을 현장에서 의식문으로 실연(實演)할 때 알아야 할 절차나 주의사항을 소개한 안내서에 해당한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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