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경흥 |
|---|---|
| 한자 | 璟興, 憬興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무량수경연의술문찬, 삼미륵경소 |
| 시대 | 삼국시대(백제), 통일신라 |
| 출생 | 620년경 |
| 입적 | 700년대 초 |
| 탑소재지 | 구례 화엄사, 화순 쌍봉사, 해인사 홍제암, 고양 봉성암. |
7세기 중반~8세기 초에 활동한 법상종 승려
7세기 중반~8세기 초반에 활동한 법상종(法相宗) 승려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원효(元曉), 태현(太賢)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저술을 편찬하였다. 행적은 『삼국유사』 ‘경흥우성(憬興遇聖)’ 조, 『법화영험전』의 ‘현비구니신(顯比丘尼身)’ 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속성은 수(水)이고, 백제 웅천주(熊川州, 공주) 출신이다. 18세에 출가하였고, 삼장(三藏)에 통달하여 명망이 높았다. 681년 문무왕이 임종하면서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에게 경흥을 국사(國師)로 삼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신문왕은 경흥을 국로(國老)로 삼고 삼랑사(三郞寺)에 주석하게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갑자기 병에 걸렸는데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어떤 비구니가 찾아와 법사의 병은 근심으로 생겨난 것이니 웃음으로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스스로 열한 가지 모습을 짓고 그때마다 익살스러운 춤을 추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나았다. 비구니는 문을 나가 남항사(南巷寺)로 들어간 후 사라졌는데, 지니고 있던 지팡이가 관음보살 탱화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 대사가 궁중을 왕래하며 말을 타고 다닐 때 문수보살이 현전하여 경계했다는 일화가 있다.
경흥은 통일신라 3대 저술가의 한 분인 만큼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아비달마·유식·계율·정토·반야부 등에 속한 여러 경론과 『법화경』, 『열반경』 관련 저술이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유식과 정토에 대한 것이 많다. 『한국불교전서』 2책에는 『무량수경연의술문찬(無量壽經連義述文贊)』과 『삼미륵경소(三彌勒經疏)』가 수록되어 있다. 전자는 정토부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무량수경』에 대한 주석서이고, 후자는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에 대한 주석서를 엮은 것이다.
· 집필자 : 김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