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경암 응윤 |
|---|---|
| 한자 | 鏡巖應允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경암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43년(영조 19) |
| 입적 | 1804년(순조 4) |
| 호 | 경암(鏡巖) |
조선 후기 벽송사에 주석했던 승려
18세기에 벽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로 『경암집(鏡巖集)』을 남긴 승려이다.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는데, 『경암집』의 본문과 행장, 발문을 통해 대략적인 활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속성은 민(閔)씨,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대대로 영남의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처음 법명은 관식(慣拭)인데 후에 응윤(應允)으로 고쳤으며, 집이 경호(鏡湖)에 있어 사람들이 호를 경암(鏡巖)이라 하였다.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15세에 입산하여 진희(震熙) 장로를 만나 삭발하고 한암(寒巖)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산문의 여러 고승을 두루 참배하고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문하에 들어갔다. 28세에 개당(開堂)하여 20여 년간 대중을 교화한 후 환암(喚庵)의 문하에서 선지(禪旨)를 탐구하였다. 이에 사방의 학자가 양종(兩宗)의 대종사(大宗師)로 칭송하였다. 경암은 일찍이 두류산(지리산) 정상에 초암을 엮어 몇몇 납자들과 날마다 정진하고 세상에 나서지 않았다. 1804년 정월 13일 세수 62세, 법랍 48년으로 입적하였다.
성품은 자상하고 학문과 지혜가 정묘하고 투철하여 학자들이 경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점을 밝혀 주었다. 당시 승속에서 대사의 설법을 총림의 으뜸으로 삼았다고 한다. 만년에는 포살범망회(布薩梵網會)를 여러 차례 개설하였는데, 이때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다고 한다.
입적 후 제자 팔관(八關)이 대사의 글을 모아 『경암집』(벽송사, 1804)을 간행하였다. 문집에는 시와 기문은 물론이고 유교 문집까지 두루 섭렵한 대사의 불교 변론(辯論)과 함께 「오효자전(吳孝子傳)」, 「박열부전(朴烈婦傳)」 등 서사문학 자료가 포함되어 있어, 불가 한문학을 다채롭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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