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호은 축함 |
|---|---|
| 한자 | 湖隱竺函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장안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호 | 호은(湖隱) |
조선 후기 장안사 승려
조선 후기 승려로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산내 암자인 지장암(地藏庵)에 머물며 수행하였다.
서울 근교 출신으로 금강산에 있는 현옹(玄顒)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호는 호은(湖隱), 법명은 축함(竺函)이다. 『동사열전』에 의하면 호은 선백(禪伯)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호은이 머물던 금강산 장안사의 풍경과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강산에는 함경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등 학인들이 몰려들었다. 장안사가 금강산이란 명산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절의 이름이 장안일 뿐만 아니라 산수 또한 장안(長安)이었다. 내가 일찍이 금강산 지장암에 들어갔더니, 어떤 삼베 두건을 쓴 선비가 『화엄경』을 펼쳐 놓고 스님과 강론하고 있었다. 영원암(靈源庵)에 올라갔을 때는 삼베 두건을 쓴 선비가 혼자 앉아서 불경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주지에게 물었더니 주지는, “그 선비는 영남에서 왔는데 여기에 머물면서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고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어떤 수좌가 말하기를, “현옹은 저의 은사입니다. 지금은 서울 근교의 산에 있는 지장암에 계시고, 호은은 저의 사형(師兄)인데 저는 지금 사형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현옹 노장은 아직도 석릉(石陵)에 머물면서 갑오년(1894) 여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호은은 금강산에 머물고 있던 현옹 선사에게 출가하여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활동하던 선사이자 강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