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호암 체정 |
|---|---|
| 한자 | 虎巖體淨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청허 휴정, 환성 지안, 설파 상언, 연담 유일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87년(숙종 13) |
| 입적 | 1748년(영조 24) |
| 호 | 호암(虎巖) |
조선 후기 대흥사 13대 종사 가운데 한 분
조선 후기 대흥사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았으며,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대둔사 12대 종사 가운데 열 번째에 해당한다.
전북 고창군 흥양(興陽)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金氏)이다. 호는 호암(虎巖), 법명은 체정(體淨)이다. 15세에 환성 지안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통을 이어받았다. 호암은 임제 의현(臨濟義玄, 1816~1874)의 제30대에 해당하고, 태고 보우(太古普愚, 1509~1565)의 제11대에 해당하며,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5세 법손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해인사와 통도사에 머물면서 후학을 지도하는 여가에 참선 정진에 게으름이 없었다. 대흥사 정진당(精進堂)에서 화엄강론 모임을 가졌는데, 이때 수백 명의 대중이 운집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62세 때인 1748년(영조 24) 강원도 장악산(長岳山)에서 53불상을 조성할 때 증명법사로 참석하였다. 그곳을 떠나면서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을 불러 말하기를, “기구(箕裘: 아버지의 유업)를 이어 내 법을 잘 보전하도록 하라. 너는 부디 부지런히 배우고 행업(行業)을 신중히 하여 우리 법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 이번 행차는 기약이 되어서 가는 것이니, 너에게 손도끼[鈯斧子: 지혜를 비유]를 주는 것이다.”라고 부촉하고 떠났다.
이후로 금강산 표훈사(表訓寺) 내원통암(內圓通庵)에 머물며 게송 하나를 지었는데, “법을 강의함에 착오가 많아, 서쪽을 물으면 동쪽이라 대답하다가 오늘 아침 크게 웃고 떠나네, 풍악산 중향성으로 떠나가노라.(講法多差失 問西喚答東 今朝大笑去 楓岳衆香中)”라 하고 입적하였다. 세수 62세이고, 법랍 47년이다.
1822년(순조 22)에 대흥사에 비를 세웠는데, 홍계희(洪啓禧, 1703~1771)가 비문을 짓고, 조명채(曹命采, 1700~1764)가 글을 썼다. 제자 연담이 지은 영찬(影讚)이 『동사열전』 권3에 있는 「호암종사전(虎巖宗師傳)」에 수록되어 있다. 31명의 문인 가운데 이름난 제자 10여 명이 있는데,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과 연담 유일 등이 배출되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