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월저 도안 |
|---|---|
| 한자 | 月渚道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편양파, 화엄학, 보현사, 대둔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38년 |
| 입적 | 1715년 |
| 호 | 월저(月渚) |
조선 후기 편양파 승려로 화엄학을 진흥시킨 학승
평양 출신으로 속성은 유(劉)이고 부친은 보인(輔仁), 모친은 김(金)씨이다. 9세에 천신(天信)에게 출가하였고, 금강산에서 편양 언기(鞭羊彦機)의 적전 풍담 의심(楓潭義諶)에게 배우고 법을 이었다. 선뿐 아니라 화엄학과 같은 교학에도 정통하였다. 27세부터 묘향산 보현사에 주석하면서 『화엄경』을 강의하여 화엄종주(華嚴宗主)로 이름을 떨쳤다.
해남 대둔사의 화엄 강회에서 법을 설하고 소요파(逍遙派) 화악 문신(華岳文信)에게 법석을 물려받았다. 당시 “남방의 총림은 스스로를 불교의 요람이라고 자신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도처에서 도안의 가르침을 청하러 왔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대둔사의 제3대 종사로 추숭되었다.
도안은 『화엄경』과 『법화경』 등의 대승경전과 『예념왕생문(禮念往生文)』과 같은 염불서 10여 종을 간행하고 유통시켰다. 또 스승 의심이 유훈으로 당부한 『화엄경』의 음석(音釋)을 끝마쳤다. 그의 비문에는 “화엄 원교는 끝없이 넓고 경계가 없는데 도안이 『화엄경소연의초(華嚴經疏演義鈔)』와 『회현기(會玄記)』에 의거해 한글로 장과 구절을 나누고 정각 최상승문을 열어 대화엄종주가 되었다.”라고 기록하였다.
1697년(숙종 23) 정축옥사 때 무고를 당해 구금되었으나 무죄가 밝혀져 왕명으로 바로 석방되었다. 한편 조정에서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의 승직을 내렸지만 사양하였다. 묘향산 진불암(眞佛庵)에서 세수 78세, 법랍 69년으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 2권 2책이 있고,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를 중보했다. 그는 청허계(淸虛系) 편양파의 계보를 이었고, 전법 제자는 설암 추붕(雪巖秋鵬)이며 수백 명의 문도를 두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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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명은 도안(道安)이고 호는 월저(月渚)이며, 속성은 유(劉)씨이고 기도(箕都: 평양)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보인(輔仁)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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