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연담 유일 |
|---|---|
| 한자 | 蓮潭 有一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편양파, 대둔사, 보림사, 화엄학, 설파 상언, 인악 의첨, 묵암 최눌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20년 |
| 입적 | 1799년 |
| 호 | 호는 연담(蓮潭), 자는 무이(無二) |
| 주요주석처 | 대둔사(大芚寺), 만덕사[萬德寺: 현재 백련사(白蓮寺)] |
| 비소재지 | 대둔사 |
조선 후기 편양파 학승으로 해남 대둔사의 12대 종사
조선 후기 편양파의 학승으로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제12대 종사이며 평생 화엄학 등 교학을 강의하고 주석서인 사기(私記)를 다수 저술하여 당시와 후대의 강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라도 화순 출신으로 어려서 유교 경서를 읽었고 부모를 여읜 후 18세에 무안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에게 출가했다. 당시 10대 법사로 이름난 상월 새봉(霜月璽封, 1687∼1767), 풍암 세찰(楓巖世察, 1688∼1767), 호암 체정(虎巖體淨, 1687∼1748),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 등에게 이력 과정의 강학 교재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전법 스승은 호암 체정이었고 사형인 설파 상언에게 화엄학을 수학했다.
1750년(영조 26) 장흥 보림사(寶林寺)에서 개강했고, 이후 30년 동안 화엄을 중심으로 한 교학을 강의했다. 1768년에는 미황사(美黃寺)에 주석했고, 1777년에는 해남 표충사(表忠祠)의 원장이 되었다. 1779년(정조 3)에는 창평 서봉사(瑞峯寺)의 주지를 맡았고, 1799년 보림사 삼성암(三聖庵)에서 세수 80세로 입적했다.
연담 유일은 선과 교에 모두 정통했으며 특히 화엄학의 대가로서 대둔사의 강학을 이끌었다. 현재 전하는 저술은 14종 23권으로 문집인 『임하록(林下錄)』 외에도 『제경회요(諸經會要)』, 『석전유해(釋典類解)』 등이 있다. 이력 과정의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의 교재에 대한 사기도 다수 남아 있는데, 그의 대표작은 흔히 유망기(遺忘記)로 불리는 화엄학 관련 사기였다.
유일은 영남의 인악 의첨(仁岳義沾, 1746∼1796)과 각각 호남과 영남의 강학을 대표했는데, 화엄은 유일의 것이 자세하고 사교과 주석은 의첨이 낫다는 평가도 나왔다. 또한 그는 대의명분론과 중화 정통주의를 내세우며 시대에 공감하는 지식인이었다. 이뿐 아니라 부휴계 묵암 최눌(默庵最訥, 1717∼1790)과 일원적 절대성과 다원적 상대성을 둘러싼 불교 심성 논쟁을 펼쳤다. 최눌은 “부처와 중생의 마음은 각각 따로 원만하며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다.”라고 했고, 유일은 “부처와 중생의 마음은 각각 원만하지만 본래는 하나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화엄학이나 유학의 이기심성(理氣心性)에 기반한 호락(湖洛)논쟁과도 연동되는 불교계의 심성 논쟁이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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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해인사(海印寺) 호암(虎岩) 화상을 찾아가 여러 해 동안 시봉하면서 그의 비밀한 종지를 다 터득했다. 연담은 영허(靈虛)·벽하(碧霞)·용암(龍岩)·영곡(靈谷)·호암(虎岩)·설파(雪坡)·풍암(楓岩)·상월(霜月)·용담(龍潭)·영해(影海), 이상 10대 법사들을 참알(參謁)하고 그들에게 교리를 배워 통달하였다. 또 동문수학을 한 설파 상언(雪坡常彦)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갈고 닦았다. 『화엄경』 강석에 강주(講主)가 된 뒤 30여 년 동안 무릇 15차례나 강론 법회를 열었는데 늘 따르는 학인들이 100여 명에 근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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