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설암 추붕 |
|---|---|
| 한자 | 雪巖秋鵬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편양파, 보현사, 대둔사, 징광사, 월저 도안, 상월 새봉, 연담 유일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51년 |
| 입적 | 1706년 |
| 호 | 설암(雪巖) |
| 주요주석처 | 법천사(法泉寺), 보림사(寶林寺), 대둔사(大芚寺), 미황사(美黃寺), 서봉사(瑞峯寺) |
| 탑소재지 | 미황사, 법천사 |
| 비소재지 | 대둔사, 백양사(白羊寺) |
조선 후기 편양파 승려로 교학에 뛰어났던 대둔사의 제5대 강사
조선 후기 편양파 승려로 교학에 뛰어나서 묘향산 등 북방에서 활동하다가 남방으로 진출하여 강석을 이끌었고, 대둔사의 제5대 강사가 되었다. 시문집 외에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와 『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에 대한 주석서를 남겼다.
1651년에 평안도 강동에서 태어나 10세에 원주 법흥사(法興寺)의 종안(宗眼)에게 출가했고 벽계 구이(碧溪九二)에게 경론을 배웠다.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편양파 화엄종장 월저 도안(月渚道安, 1638∼1715)에게 수학한 후 그의 법을 이었다. 그 뒤 남방의 여러 사찰을 순례했는데, 가는 곳마다 학승들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1702년 낙안 징광사로 옮겨 강석을 열었고, 대둔사(大芚寺) 백설당(白雪堂)에서 화엄 강회를 열었다. 이때 『화엄강회록(華嚴講會錄)』을 남겼고, 대둔사 12대 강사 중 제5대 강사가 되었다.
선과 교에 정통했고 시문에도 능했으며 계율을 잘 지켰다. 또한 사람을 만날 때는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만년에 보현사에서 몇 년간 은거하다가 1706년(숙종 32) 8월 5일에 세수 56세로 입적했다. 대둔사와 낙안 징광사(澄光寺)에 탑이 세워졌고, 대표적 제자로는 상월 새봉(霜月璽封, 1687∼1767)이 있다.
저술로 『설암잡저(雪巖雜著)』 3권, 『설암난고(雪巖亂藁)』 2권,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 1권,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1권을 지었다. 시문집인 『설암잡저』에는 「묘향산지(妙香山誌)」가 수록되어 있고, 『설암난고』에는 16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다. 뒤에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은 “『도서』와 『절요』의 주석서가 없다가 근래 상봉 정원(霜峰淨源)이 과문을 썼지만 간략하고, 설암 추붕과 회암 정혜(晦庵定慧)가 지은 사기가 참고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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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의 법명은 추붕(秋鵬)이고 호는 설암(雪巖)이며, 속성은 김씨이고 강동(江東: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스님은 가냘프고 여윈 모습에 위의 또한 빼어난 데가 없었으나 두 눈동자만큼은 형형(炯炯)한 빛이 사람을 쏘았다. 계행(戒行)이 매우 높았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하였다. 사람들과 담론할 때의 예봉(銳鋒)은 불꽃이 일어나듯 정열적이었으며, 샘물이 솟아나듯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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