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무용 수연 |
|---|---|
| 한자 | 無用秀演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부휴계, 백암 성총, 송광사, 선암사, 징광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51년 |
| 입적 | 1719년 |
| 호 | 무용(無用) |
| 탑 소재지 | 송광사 |
| 비 소재지 | 송광사 |
조선 후기 송광사에서 활동한 부휴계 적전 승려로 『무용당유고』의 저자
무용 수연(無用秀演)은 부휴계의 적전인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의 제자이다. 송광사(松廣寺)에서 출가했고 징광사(澄光寺)에서 강의를 열었으며 선·교·염불의 삼문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저술로는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무용당집(無用堂集)』]가 있다.
1651년 전라도 익산에서 태어나 8세부터 유학 경서와 『사기(史記)』를 읽었고 13세에 부모를 여의고 19세에 순천 송광사(松廣寺)의 혜관(惠寬)에게 출가했다. 얼마 후 선암사(仙巖寺)의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을 찾아가 경론을 배운 뒤 “원돈(圓頓)의 법이 모두 네게 있다.”라는 인정을 받았고, 1년 동안 백운산(白雲山)에 은거하며 수행했다.
1673년(현종 14)에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각성하고 참선 수행에 몰두했다. 1676년에는 침굉 현변의 소개로 조계산 은적암(隱寂庵)에서 백암 성총을 만나 그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고 법을 전해 받았다. 이후 낙안 징광사에서 강의하고 그 뒤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으로 옮겨 교화를 펼쳤는데, 선과 교에 염불을 함께 닦는 조선 후기의 삼문 수업 체계를 바탕으로 후학을 가르쳤다.
1689년 성총이 전라도 임자도에 표착해 온 중국 가흥대장경의 불서를 복각할 때 『화엄경소연의초(華嚴經疏演義鈔)』, 『금강경간정기(金剛經刊定記)』, 『정토보서(淨土寶書)』 등의 간행에 동참했고 『화엄연의초』 등을 전해 받아 그 정수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1692년에는 선암사에서 화엄회를 열게 되었다.
1704년에는 용문산 은봉암(隱峯庵)으로 옮겨서 농사를 지으면서 참선했다. 이때 호남과 영남의 승려 300여 명이 운집하여 그들에게 『화엄경』과 『선문염송(禪門拈頌)』을 강의했다. 말년에 염불 수행에 힘쓰다가 1719년 세수 68세, 법랍 51년으로 입적했다. 전법 제자는 영해 약탄(影海若坦, 1668~1754)이다. 시문집인 『무용당집(無用堂集)』은 승속과 유불을 뛰어넘는 그의 폭넓은 교유 관계와 유불일치론, 송광사 등 여러 사찰의 역사 등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
師法諱秀演。字無用。遐邇緇素。咸稱以無用爲軒號。故仍以爲號。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