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혜업 |
|---|---|
| 한자 | 惠業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현각, 현유, 현태, 혜륜 |
| 시대 | 삼국시대(신라) |
| 출생 | 신라 |
| 입적 | 인도 날란다사 |
신라 출신으로 인도에 가서 『유마경』을 연구하고 날란다사에서 입적한 구법승
혜업(惠業·慧業)은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로 중국을 거쳐 7세기 중엽에 육로로 인도에 가서 불교를 배운 구법승이다. 인도의 마하보디사에 근거지를 두고 불교 유적지를 참배했고, 이후 날란다 사원에 머물렀다. 배우는 데 능력이 뛰어났고 『유마경(維摩經)』을 한역본과 비교하는 등 연구에 매진하다가 60세에 입적했다. 7세기 후반에 인도에 갔던 당의 승려 의정(義淨)에 의하면 『양론(梁論)』에 '불치수(佛齒樹) 아래에서 신라 승려 혜업이 베껴 씀'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는 혜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혜업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도량이 넓었다. 우뚝 솟은 바위와 같은 얼굴과 거동에 깎아놓은 듯한 풍채와 골격을 가졌다. 변방인 신라 땅을 떠나서 곧바로 중국으로 들어갔고, 정관 연간(627~649)에 마침내 서역으로 향했다. 모래가 흐르는 광활한 사막을 건너고 설산의 높고 험한 봉우리도 올랐다. 맑고 빛나는 새벽이 열릴 때마다 깊은 숲속에 들어가 숨고, 밝은 달이 하늘에 잠기면 멀고 먼 길을 헤쳐 갔다. 불법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겼고 불법을 널리 펴는 데 간절히 뜻을 두었다. 마침내 보리사(菩提寺: 마하보디사)로 가서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보고 예배했다. 또 나란다사(那爛陀寺)에서는 그 발자취에 의지해 오래도록 머물렀다. 『정명경(淨名經)』(유마경)을 청해 읽었는데 중국의 한역본과 대조하면서 그 뜻을 모두 통하고 꿰뚫었다. 『양론(梁論)』[『섭대승론(攝大乘論)』의 진제(眞諦) 한역본] 하기(下記)에 ‘불치목(佛齒木) 아래서 신라 승려 혜업이 베껴 쓴다.’라고 되어 있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서는 ‘혜업이 이 절에서 입적하니 나이가 60여 세 정도였다. 그가 필사한 범본은 모두 나란다사에 있다.’라고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의해(義解)」 제5의 ‘귀축제사(歸竺諸師)’조에서도 고대 삼국 출신의 인도 구법승으로 혜업과 함께 현각(玄恪), 현유(玄遊), 현태(玄泰), 혜륜(惠輪)이 나오며, 이들은 모두 자신을 잊고 법을 따라 부처의 교화를 보기 위해 중천축(中天竺)에 갔다고 평가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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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惠業 器局冲深 氣度凝深 巉巖容儀 戌削風骨 直辭邊壤 遽入中華遂於貞年中 往遊西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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