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현태 |
|---|---|
| 한자 | 玄太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현각, 현유, 혜륜, 혜업 |
| 시대 | 삼국시대(신라)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신라 출신으로 7세기 중반 인도에 갔다가 중국에 돌아온 구법승
현태(玄太)는 신라 출신으로 7세기 중반 인도에 갔다가 중국에 돌아온 구법승(求法僧)이다. 인도식 이름은 ‘살바신야제바’로서 번역하면 일체지천(一切智天)이다. 그는 당나라로 갔다가 650∼655년 사이에 인도로 떠나 지금의 티베트와 네팔 지역을 지나 중인도에 갔다. 대각사(大覺寺: 마하보디 사원)에 머물며 경전과 논서를 상세히 검토한 후 당나라로 되돌아왔다. 다만 이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는 현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현태는 신라 사람으로서 범명(梵名)은 살바신야제바(蕯婆愼若提婆)[중국어로는 일체지천(一切智天)]이다. 어려서부터 생각함이 깊어 큰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고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략)… 일찍이 배를 타고 당나라에 갔는데 학문이 예사롭지 않아서 깊고 미세한 이치를 파헤치고 끝까지 연구했다. 당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연간(650~655)에 마침내 중인도로 가서 보리수나무에 예배하고, 다섯 겹의 금 지팡이를 휘두르며 금·은·유리로 된 3도(道)의 보배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려움과 위험이 있어도 풍토를 끝까지 둘러보려 했지만, 다 가서 볼 수는 없었다. 결국 대각사로 가서 머물며 경론을 자세히 검토하고 지역 풍속을 두루 살폈다. 그 뒤에 중국으로 돌아와 법의 교화를 널리 펴자 숨은 공적이 드러났고 그의 성공은 높고도 뛰어났다.”
이어서 찬(讚)에는 “이상의 몇 사람은 아득한 옛날 우리나라에서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 법현(法顯)과 현장(玄獎)의 뛰어난 발자취를 좇았다. 길이 끊어진 지역을 왕래하기를 마치 자기 마을 길처럼 여겼으니 비유컨대 그들은 한(漢) 무제(武帝) 때 서역에 사신으로 다녀온 장건(張騫) 등에 견줄 만하다.”라고 기리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의해(義解)」 제5의 ‘귀축제사(歸竺諸師)’조에서도 고대 삼국 출신의 인도 구법승으로 현각(玄恪), 현유(玄遊), 혜륜(惠輪), 혜업(惠業)과 함께 현태(玄泰)가 나오며, 이들이 모두 자신을 잊고 법을 따라 부처의 교화를 보기 위해 중천축(中天竺)에 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중국에 돌아왔다고 기록된 것은 현태뿐이다. 현태의 행적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도 소개되어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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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玄太 梵新羅人 法名蕯婆愼若提婆 唐言一切智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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