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현유 |
|---|---|
| 한자 | 玄遊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현각, 현태, 혜륜, 혜업 |
| 시대 | 삼국시대(고구려)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중국에 유학 갔다가 인도로 구법행을 떠난 고구려의 승려
현유(玄遊)는 고구려 승려로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승철(僧哲)에게 배우고 불교의 깊은 뜻을 물었으며, 부처의 자취를 찾아서 스승 승철과 함께 배를 타고 인도로 순례행을 떠났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 짧게 다루고 있으며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그는 천성이 소탈하고 까다롭지 않아서 잘 화합했다고 하며, 깨달음과 중생의 구제를 함께 추구하는 데 뜻을 두었고, 동인도에 머무르다 입적했다고 한다.
『해동고승전』에서는 현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현유는 고구려 사람이다. 그는 소탈하고 화합했으며 타고난 성품은 따뜻하고 온아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마음을 두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승철 선사(僧哲禪師)를 예로 섬기고 옷을 추켜올리며 깊은 뜻을 물었다. 승철은 성인의 자취를 사모하여 서역으로 배를 띄워 인연에 따라 교화했다. 순례하고 돌아다니며 고승들을 따랐고 이를 인연으로 머물다가 동인도로 돌아왔다. 의정(義淨)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서] 현유가 어려서부터 법을 사모하고 뜻이 굳건했음을 칭송했다. 현유는 이미 중국에서 정성을 다하고 다시 서천(인도)으로 가서 법을 청했다. 중국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중생을 위해 그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10법(十法)을 전하고 법을 넓혀서 세월이 흘러도 명성이 잊히지 않았다. 비록 이역만리에 몸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 공적과 이름은 크고도 뛰어났다. 내 우연히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러 사모하게 되었기에 이를 뽑아서 엮어 썼다.”
당의 의정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서는 승철의 제자 현유가 고구려국 사람으로 스승을 따라 사자국(師子國)에서 출가하고 그곳에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의해(義解)」 제5의 ‘귀축제사(歸竺諸師)’조에도 고대 삼국 출신의 인도 구법승으로 현유 외에 현각(玄恪), 현태(玄泰), 혜륜(惠輪), 혜업(惠業) 등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이 모두 자신을 잊고 법을 따라 부처의 교화를 보기 위해 중천축(中天竺)에 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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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玄遊 句高麗人 叶性虛融 禀質溫雅 意存二利 志重詢求 乘盃泝流 考室幽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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