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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한글현각
한자玄恪
유형인물
키워드해동고승전, 삼국유사, 혜륜, 혜업, 현유, 현태
시대삼국시대(신라)
출생미상
입적미상
중국에 유학 갔다가 인도로 구법행을 떠난 신라의 승려
현각(玄恪)은 신라 승려로 성품이 강직하고 설법을 좋아했다고 한다. 같은 신라 출신인 현조(玄照) 등과 함께 중국 장안(長安)에서 인도로 구법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인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대각사(大覺寺)]에서 머물렀고, 40세에 풍토병에 걸려 이역만리에서 세상을 떴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승려 현각은 신라 사람이다. 의연하게 홀로 굳건하고 커다란 지혜와 식견을 갖추었다. 성격이 강설을 좋아하여 근기에 맞게 남들을 감응시켰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불속에 핀 연꽃이라 하였다. 변방 땅에 태어나 중화를 보지 못함을 늘 한탄했으며 중국에 관한 소문만 듣고도 기뻐했다. 마침내 뱃길로 중국에 다다르자 멀리 동쪽을 바라보고는 서쪽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마음으로 잠시 그려보고 두루 스승을 찾아다니는 데 뜻을 두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달이 가듯이 밤낮으로 운수에 맡겨 행했다. 혹은 깎아지른 절벽이 사방을 가로막아서 새만 다닐 듯한 구름처럼 높은 길을 건넜으며, 혹은 빙판이 천 리 길이나 이어진 곳을 바람 따라 걷고 구름 위에 눕기도 했다. 마침내 현조 법사와 함께 서로 잇달아 인도의 대각사(마하보디 사원)에 이르렀다. 타오르는 사막 길을 여행했으며 해가 중천에 떠서 그림자 없는 나라라고 경탄하기도 했다. 책을 쌓아놓고 깊이 연구하였으니 옥을 다듬어 그릇을 만드는 듯했다. 40세가 지나자 병이 들어 죽었다.” 또한 『해동고승전』에서는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가 인도에 가 있을 무렵 혜업(惠業)이 보리사(菩提寺)에 머물렀고 현각과 현조도 대각사에 왔다고 하며 이들이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인도 구법행을 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두 다 뛰어난 인연을 심고 부처의 씨앗을 풍부히 하려고, 멀리 고국을 떠나 천축의 풍광을 보았다. 동과 서에서 높은 명성을 떨치고 끝없는 큰 기쁨 드리웠으니, 마음이 담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의해(義解)」 제5의 ‘귀축제사(歸竺諸師)’조에도 고대 삼국 출신의 인도 구법승으로 혜각 외에 혜륜(惠輪), 혜업(惠業), 현유(玄遊), 현태(玄泰) 등의 이름이 나오며, 이들이 모두 자신을 잊고 법을 따라 부처의 교화를 보려고 중천축(中天竺)에 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현태만이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알려져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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