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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한글지명
한자智明
유형인물
키워드해동고승전, 의천, 신편제종교장총록, 사분율
시대삼국시대(신라)
출생미상
입적미상
중국에 유학하고 『사분율갈마기』를 저술한 신라의 승려
지명(智明)은 신라 승려로 585년(진평왕 7)에 중국 남조의 진(陳)나라에 들어가 불교를 배우고, 602년에 신라 사신을 따라 귀국했다. 진평왕은 그가 계율을 잘 준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 대덕(大德)으로 삼았다. 저서로는 비구와 비구니 계율에 대한 부파의 율장인 『사분율(四分律)』의 주석서인 『사분율갈마기(四分律羯磨記)』가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기재되어 있지만 전하지는 않는다.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1215)에 나오는 그의 행적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승려 지명은 신라 사람이다. 신통하게 이해하고 빨리 깨달았으며 행하고 그침이 법도에 맞았다. 안으로는 은밀하게 실천하고도 다른 사람의 덕이라고 높이고 잘못된 것은 자신을 향하게 했다. 값진 것을 희사해 남에게 주고 온화하고 의기가 높아 행동거지에서 배울 게 있었다. 불교가 해동에서 공인된 이후 영웅 준걸이 간간이 떨쳐 일어나 혹은 스스로 깨우침에 최선을 다했고 혹은 멀리 도를 구하여 길을 떠났다. 서쪽으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나왔다. 지명은 한 시대를 바로잡고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로서 진평왕 7년(585) 7월에 중국의 진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했다. 바다와 육지를 구름처럼 노닐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다니며 도가 있고 신령한 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물으니, 나무가 먹줄을 따르는 것처럼 곧고 금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훌쩍 떠난 지 어느새 10년이 되어 학문은 이미 골수를 얻었기에 마음으로 간절히 법을 전하려 했다. 진평왕 24년(602) 9월에 중국에 온 신라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다. 왕은 지명의 풍모를 흠모하고 계율을 중시한 것을 추앙하여 대덕으로 삼고 (궁으로) 오기를 권했다. 지명은 높은 명산처럼 우뚝 솟았고 도량은 바다를 품었으며, 지혜의 달로 비추고 덕행의 바람으로 떨치니, 승속 모두에게 모범과 교훈이 되었다. 뒤에 대대덕(大大德)이 되어 높은 자리에 우뚝 섰으나 입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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