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아리야발마 |
|---|---|
| 한자 | 阿離耶跋摩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혜업, 현각 |
| 시대 | 삼국시대(신라)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주요주석처 | 황룡사(皇龍寺) |
신라에서 중국을 거쳐 인도에 갔다가 나란타사에서 입적한 승려
중국 당(唐)의 의정(義淨)이 지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고려 후기인 1215년에 화엄종 승려 각훈(覺訓)이 펴낸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과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구법승이다. 신라에서 중국으로 유학 갔다가 다시 인도에 가서 나란타사에서 입적한 승려로서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는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신라에서 중국으로 갔다. 부처의 자취를 찾아서 당나라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장안(長安)에서 천축국(인도)으로 갔고,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무르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공부하고 이를 패엽(貝葉)에 베껴서 돌아오고자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70여 세로 나란타사에서 입적했다.
『해동고승전』 권2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승려 아리야발마는 신통한 지혜가 있어 홀로 깨쳤으며, 모습이 보통 사람과 달랐다. 신라에서 중국에 들어가 스승을 찾아 이익을 청할 때는 아무리 멀어도 찾아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간절히 뜻을 두어 드디어 인도에 법을 구하러 갔다. 총령(葱嶺: 파미르 고원)에도 올랐고 기이한 명승지를 찾아다녔으며, 부처님의 자취를 두루 찾아 참배했고 나란타사에 머물다가 입적했다.
『해동고승전』에서는 아리야발마와 혜업(惠業), 현각(玄恪)과 현조(玄照)가 모두 정관 연간에 인도에 가서 천축의 풍속을 보았고, 동쪽과 서쪽에서 명예를 떨쳤다고 하며 당의 삼장(三藏) 법사 현장(玄奘)과 비교하고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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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阿離耶跋摩 神智獨悟 形貌異倫 始自新羅 入于中國 尋師請益 無遠不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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