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아도 |
|---|---|
| 한자 | 阿道(我道)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순도 |
| 시대 | 삼국시대(①고구려, ②③신라)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주요주석처 | 나란타사 |
① 374년 중국 동진에서 고구려에 와 이불란사에 머문 승려
② 신라 소지왕 때 모례의 집에 온 이방인 승려
③ 신라 미추왕 때 고구려에서 왔다고 하는 승려
372년(소수림왕 2) 중국 북조 전진(前秦)의 숭불 군주 부견(符堅)이 고구려에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 불상과 불경을 전해 주었다. 2년 후에는 남조의 동진(東晉)에서 ① 아도(阿道)가 고구려에 왔는데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지어 주석하게 했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는 신라 소지왕(비처왕, 재위 479~500) 때에도 ② 아도(阿道)라는 승려가 시자 세 명과 함께 모례(毛禮)의 집에 와서 몇 년간 살다 죽었는데, 아도는 앞서 눌지왕(재위 417~458) 때 고구려에서 와서 향을 피우고 기도해 공주의 병을 낫게 한 묵호자(墨胡子)와 모습이 비슷했다고 하여 인도나 서역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도의 시자 세 명은 이후 경전과 율장을 강독했고 신라에 점차 불교를 믿는 이들이 생겼다고 한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서는 옛 기록을 인용해 또 다른 설도 소개하고 있는데, “527년 3월 11일에 아도가 오니 천지가 진동했다. 아도는 누더기를 입고 지팡이와 발우를 들고 경전을 외면서 모례의 집에 왔다. 모례는 이전에 고구려 승려 정방(正方)이나 멸구자(滅垢玼)가 불교를 펼치려다 죽임을 당한 일들을 들면서 무엇을 찾아왔느냐고 묻고 정중히 모셨다.”라고 하면서 아도가 향의 쓰임새를 알려준 일과 법흥왕의 불교 공인을 연결 짓고 있다.
또 「아도본비(我道本碑)」에서는 미추왕(재위 262~283) 때 신라에 왔다고 하는 ③ 아도(我道)를 중국 위(魏)나라 사신 아굴마(我掘摩)와 고구려 여인 고도령(高道寧) 사이에서 태어난 고구려 승려로 기록한 것으로 나오는데, 고구려의 공식 불교 수용보다 100년이나 앞선 시기여서 신빙성이 의심된다.
이처럼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를 전한 이의 이름으로 아도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이는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고 아두(阿頭)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없는 승려’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서 불법을 전한 전도승의 대명사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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按我道本碑云 我道高麗人也 母高道寧 正始間曺魏人我崛摩 奉使勾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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毗處王時 有我道和尙 與侍者三人 亦來毛禮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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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道來自晋 又創伊弗蘭寺 以置阿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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