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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운

한글법운
한자法雲
유형인물
키워드흥륜사, 황룡사, 명관, 각덕, 팔관회, 전륜성왕
시대삼국시대(신라)
출생미상
입적576년
시호삼맥종(彡麥宗), 심맥종(深麥宗), 심맥부(深麥夫)
주요 주석처성문사(省門寺)[초문사(肖門寺)라고도 함]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신라 24대 진흥왕의 법명
법운(法雲)은 신라 24대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의 법명이다.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의 동생 입종 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고, 왕비는 사도(思道) 부인, 아들은 동륜(銅輪)과 사륜(舍輪)이다. 540년 어린 나이로 즉위했고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를 쓴 551년부터 직접 정치를 행했다. 진흥왕 때 신라는 한강 유역과 함경도 일부 지역까지 영토를 크게 넓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북한산, 마운령 등 각지의 진흥왕순수비와 단양적성비가 국력 확장의 실상을 잘 보여 준다. 551년 거칠부(居柒夫)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10개 군(郡)을 빼앗았고, 553년에는 백제의 동북 국경 지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했다. 다음 해 관산성(管山城)에서 백제군을 물리쳤는데 이때 백제의 성왕(聖王)이 전사했다. 562년에는 대가야(大加耶)를 완전히 복속시켰고, 이어 한강 유역을 차지해 중국과 직접 소통이 가능해졌다. 564년에는 신라에서 북제(北齊)로 사신을 보냈고, 565년에는 남진(南陳)에서 승려 명관(明觀)이 1,700여 권의 불교 경전을 가지고 왔다. 진흥왕은 행정과 군사 체계를 개편하여 중앙집권체제 강화에도 힘썼는데, 병부령(兵部令), 전대등(典大等) 등 관직을 정비하고 6정(六停)의 군사 조직도 갖추었다. 불교 진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544년 흥륜사(興輪寺)를 완공했고 승려가 되는 것을 공식 인정했다. 549년에는 중국 양(梁)에서 신라 유학승 각덕(覺德)을 시켜 진신사리를 보내왔고 왕은 흥륜사 앞에서 이를 맞이했다. 553년에는 황룡사(皇龍寺) 건립을 시작하여 566년, 또는 56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572년에는 전사한 장병들을 위해 외사(外寺)에서 7일 동안 팔관회(八關會)를 열었고, 574년 황룡사에 장륙상(丈六像)을 조성해 봉안했다. 진흥왕은 국통(國統)·주통(州統)·군통(郡統) 등의 불교 조직을 설치했다. 화랑제도도 진흥왕 때 시작되었는데 미래불인 미륵불신앙과 관련이 있으며, 진흥왕도 불교의 이상 군주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내세웠다. 진흥왕은 법흥왕(法興王)과 마찬가지로 말년에 삭발하여 승복을 입었고 법명을 법운(法雲)이라고 했다. 계율을 지키고 청정히 살다가 576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안장했으며, 왕비도 출가하여 영흥사(永興寺)에서 지냈다고 한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 신라 진흥왕대의 국가발전과 정치사상-진흥왕순수비·황룡사장육존상 조성의 역사적 의의
    학술논문 최병헌 | 신라문화 | 54 | 경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 2019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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