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법공

한글법공
한자法空
유형인물
키워드삼국유사, 해동고승전, 흥륜사, 이차돈
시대삼국시대(신라)
출생미상
입적540년
시호원종(原宗)
불교를 공인한 신라 23대 법흥왕의 법명
법공(法空)은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의 법명이다. 김씨 왕족인 지증왕(智證王)의 맏아들이고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후 신라는 국력이 크게 신장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517년 병부(兵部)를 설치했으며, 520년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公服)을 제정했다. 521년에는 중국의 양(梁)에 사신을 보내 교류했고, 524년 사벌국(沙伐國)이 있던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여 사벌주(沙伐州)를 설치했다. 531년에는 국정을 총괄하는 상대등(上大等) 직위를 신설하고, 532년 금관가야와 아라가야를 병합하여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했다. 이어 536년을 신라의 독자적 연호인 건원(建元) 원년으로 했다. 528년(법흥왕 15)에 불교를 공인해 고대국가의 이념적 기초를 마련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측근 이차돈(異次頓)을 처형했고 흰색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적이 일어나자 귀족들이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529년에는 살생을 금하라는 왕명을 내렸고, 불교에 귀의한 법흥왕은 노년에 출가하여 법공이라고 했다. 법흥왕의 왕비 보도(保刀) 부인도 영흥사(永興寺)를 짓고 출가했으며 법명을 묘법(妙法)이라 했다. 540년에 세상을 떠났다. 『삼국사기』에는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선도산(仙桃山) 기슭이다.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어 조카인 삼맥종(三麥宗)이 24대 진흥왕(眞興王)으로 즉위했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법흥왕이 키가 7척이나 되며 관대하고 온후하여 사람을 아꼈다고 나온다. 또 미추왕이 아도(阿道)와 함께 불교를 처음 열려고 한 일을 되살리기 위해 흥륜사(興輪寺) 창건에 나섰다고 하고 있다. 이후 귀족들의 반대와 이차돈의 순교 과정을 매우 자세하고 생생하게 기록했고, 천경림 목재로 된 대들보를 올려 절의 공역이 완료되자 왕위를 물려주고 출가하여 법공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이에 절 이름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했는데, 신라 최초의 사찰이었고 왕의 시호가 법흥(法興)인 것도 법의 일어남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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