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무명(고구려)

한글무명(고구려)
한자無名(高句麗)
유형인물
키워드해동고승전
시대삼국시대(고구려)
출생미상
입적미상
『해동고승전』에 실린, 이름을 알 수 없는 고구려 승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는 권1과 권2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승려 3명이 나온다. 그중 권2에는 “신라의 승려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장안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실리불서국(室利佛逝國)에 닿았으나 병에 걸려 모두 죽었다.”라고 짧게 기술하고 있다. 이에 비해 권1의 고구려 승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교적 자세한 행적이 전한다. 승려 무명[亡名]은 고구려 사람이다. 도에 뜻을 두고 인(仁)에 의지하였으며, 진리를 지키고 덕(德)에 의거하였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았으며 안으로 종을 쳐서 (은은히 법의 소리를 전하니) 나라 안에 명성이 흘러넘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진(晉)나라의 지둔(支遁) 법사는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상좌(上座) 축법심(竺法深)은 중국 중주(中州) 지역 유원진(劉元眞)의 제자로서 모습과 성품이 곧고 뛰어나며 도인과 속인을 모두 모았으며, 수도에 있든 지방에 있든 계율을 잘 지켜 내외가 모두 우러러보았으니, 도를 펴는 데 최고였습니다.”라고 했다. 지둔공은 중국에서 덕망이 높아 그가 편지를 보내고 교류한 이는 반드시 훌륭한 재능과 학식이 있는 사람일 텐데, 하물며 외국 사람이라면 아주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편지를 보냈겠는가? 또 불교가 (중국 남조의) 진나라로부터 해동에 전해졌다면 앞선 송(宋)나라와 제(齊)나라 때에도 마땅히 호걸들이 때때로 나타났을 텐데 기록이 없으니 슬프다. 그러나 저 송나라(420~479) 사람 주영기(朱靈期)[혹은 주허(朱虛)]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표류하다 섬에 상륙하여 승려 배도(杯渡)의 발우(鉢)를 얻었다. 또 제나라(479~502) 때 고구려는 아직 부처가 세상에 나온 일을 알지 못하여 고승 법상(法上)에게 물었더니 법상은 옛날 주(周)나라 소왕(昭王) 때의 상서로운 조짐으로 대답하였다. 이에 덕이 높고 훌륭한 이들이 서쪽의 중국으로 기쁘게 달려가 불교의 요체를 물어 알게 된 자가 참으로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좋은 역사가가 없어 그 내력을 기록하지 못했음이 한스러울 뿐이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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