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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시

한글담시
한자曇始
유형인물
키워드해동고승전
시대삼국시대
출생미상
입적미상
광개토왕 때 고구려에 경·율을 전하고 교화를 펼친 중국의 승려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로서 혜시(惠始)라고도 하며 발이 얼굴보다 희어 백족(白足)이라 했다. 고구려 광개토왕 5년(396) 무렵 경전과 율장을 가지고 요동 지방에 와서 삼귀오계(三歸五戒)의 법으로 교화를 펼쳤다. 405년 이후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418년 관중(關中) 지방에 전란으로 살육과 약탈이 자행될 때 불가사의한 행적으로 백성들을 보호했다. 또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가 폐불을 행했지만 이적을 행하여 불교를 되살렸다. 『양고승전(梁高僧傳)』 그리고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담시는 관중 사람으로 출가한 뒤에 기이한 행적이 많았고 발이 얼굴보다 희고 진흙탕 물을 밟고 건너도 젖은 적이 없어서 세상에서 그를 백족 화상으로 불렀다. 396년에 경·율 수십 부를 가지고 요동에 와서 교화했는데 근기에 맞게 가르쳤고 계(戒)에 귀의하게 하였다. 『양고승전』에서는 이를 고구려에 불법이 열린 시작으로 보았지만, 전진(前秦)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를 통해 고구려에 경전과 불상을 보낸 지 25년이 지난 뒤였다. 405년경에 중국으로 돌아가 삼보(三輔) 지역에서 불법을 전파했다. 북방의 흉노족이 관중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였는데, 담시에게 상처조차 입힐 수 없자 승려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이에 산속으로 들어가 두타행(頭陀行)을 닦았다. 이후 북위의 태무제 탁발도(拓跋燾)가 장안(長安)을 점령했다. 이때 재상이 된 최호(崔浩)는, 불교는 세상에 무익하고 백성의 이익을 해친다고 하며 폐불 정책을 펴게 했다. 태무제는 446년에 군사를 보내 사찰에 불을 지르고 약탈했으며 승려들을 환속하게 했다. 담시는 은둔해 있다가 450년 무렵 궁궐 문 앞에 갔는데, 칼로 베었지만 붉은 줄 같은 흔적만 남을 뿐 아무 이상이 없었다. 또 산의 우리에 가두어 둔 호랑이에게 먹이로 주었지만 호랑이들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에 태무제는 불교의 위신력이 도교보다 큰 것을 알았고 담시에게 참회하고 예를 행했다. 담시가 인과의 보응을 설명하자 신이한 영험이 나타났으며, 이후 불교는 다시 교세를 펴고 중흥의 길을 걸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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