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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종

한글중도종
한자中道宗
유형역사
키워드오교구산, 오교양종, 법성종, 교종, 중신종, 선교양종
연도1407년(태종 7) 이전
시대~조선 초기
관련장소청주 보경사, 배주 견불사, 익주 미륵사 등
조선 초기 11개 불교 종파 가운데 하나로 중관 계통 법성종의 이칭
중관(中觀) 계통인 법성종(法性宗) 계열의 불교 종파이다. 언제 종파로서 성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도종이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 기록에 처음 나온다. 태종 때 11개 종파의 하나였으며 7개 종파로 축소·통합될 때 신인종(神印宗)과 함께 중신종(中神宗)이 되었다. 그 뒤 세종 대에 7개 종파가 다시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시흥종(始興宗)과 함께 교종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선종과 교종의 여러 종파를 아울러 오교구산(五敎九山), 그리고 오교양종(五敎兩宗)으로 통칭했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활동한 11세기 후반에는 계율(戒律)·법상(法相)·법성(法性)·원융(圓融)·열반(涅槃)의 오교가 교종을 대표했고, 선종의 구산선문과 아울러 오교구산이라고 했다. 이후 의천이 선종의 하나로 천태종(天台宗)을 세움에 따라, 구산선문의 기존 선종은 조계종(曹溪宗)이라고 이름했다. 이후 조계종과 천태종을 합쳐 양종이라고 했고, 선종과 교종의 전체 불교 교단을 오교양종이라고 불렀다. 중도종은 오교 가운데 법성종 계통의 종파로서, 법성종의 성종(性宗)은 상종(相宗)인 법상종과 대비된다. 법성종은 공(空) 개념을 중시하는 중관 사상에 바탕을 둔 종파로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일찍이 삼론종(三論宗)이 건립되었다. 한국의 경우 삼론학은 삼국시대부터 수용되어 높은 이해 수준을 보였지만 종파로서 성립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이 개창되고 태종 대에 억불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11개 종파의 242개 사찰이 승정 체계 안에 포함되었다. 1406년(태종 6) 당시 공인된 11개 종파는 중도종을 비롯해 조계종·총지종(摠持宗)·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화엄종·도문종(道門宗)·자은종·신인종·남산종(南山宗)·시흥종이었다. 이때 중도종과 밀교 계통의 신인종에는 합쳐서 30개 사찰이 지정되었다. 이듬해에는 11개 종파가 7개로 다시 축소되었다. 조계종·자은종·시흥종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중도종과 신인종은 중신종(中神宗)이 되었다. 또 천태소자종과 천태법사종은 천태종, 총지종과 남산종은 총남종(摠南宗)으로 합쳐졌고, 도문종은 화엄종에 포섭되었다. 이와 함께 242사 가운데 읍치에 있던 고려 이래 자복사(資福寺) 88사가 명산대천의 사찰로 대체되었다. 중도종과 신인종이 통합된 중신종의 경우 임실 진구사(珍丘寺), 함흥 군니사(君尼寺), 아주 동림사(桐林寺), 청주 보경사(菩慶寺), 봉화 태자사(太子寺), 고성 법천사(法泉寺), 배주 견불사(見佛寺), 익주 미륵사(彌勒寺) 등의 8개 사찰이 새로 승정 체계 안에 들어왔다. 이후 1424년(세종 6)에는 기존의 불교 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했는데, 이때 중신종은 화엄종·자은종·시흥종과 함께 교종에 속하게 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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