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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찰법회

한글점찰법회
한자占察法會
유형역사
키워드점찰보, 육륜회
시대신라~고려
『점찰선악업보경』에 의해 개설되는 법회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에 의해 개설되는 법회이다. 경전에 따르면 열 가지의 선악(善惡)을 의미하는 열 개의 나무 조각, 신(身)·구(口)·의(意)가 적힌 세 개의 나뭇 조각, 1~18까지가 적힌 여섯 개의 나뭇 조각을 던져 여러 생에 걸쳐 축적된 선악의 업(業)을 알아봄으로써 현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참회 수행하는 의식이다. 신라의 점찰법회와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여러 기록이 전한다. 신라 원광(圓光)이 중국에서 귀국한 후에 가슬갑사에 주석하면서 점찰보(占察寶)를 설치하였다고 한 기록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그 후 선도산 안흥사에서 비구니 지혜(智惠)가 매년 봄가을에 10일 동안 점찰법회를 열었고, 금강산 도량사에서는 사복(蛇福)을 위해 매년 3월 14일에 점찰법회를 열었다. 진표(眞表)는 금강산 발연사에서 점찰법회를 열어 중생을 제도하였고, 영심(永深)이 진표의 가르침에 따라 속리산 길상사에서 점찰법회를 열었다. 또 보천(寳川)이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오대산 남대 지장방에서 점찰법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점개(漸開)가 흥륜사에서 육륜회(六輪會)를 개설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육륜회는 점찰법회일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점찰법회와 관련해서도 여러 기록이 전한다. 1137년(인종 15) 권적(1094~1147)이 쓴 「지리산수정사기」에서 결사 수행의 방법으로 점찰법회를 했다고 하였다. 또 김부식(1075~1151)은 「속리산점찰회소」를 지어 점찰법회를 통해 임금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였고, 유희(劉羲)는 「도솔원점찰회소」에서 도성의 난리로 죽은 원혼들이 점찰법회를 통해 위로받고 제도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규보(1169~1241)는 「점찰회소」에서 육도를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이 점찰법회를 통해 번뇌를 씻고 정토 왕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위의 여러 기록에서 보듯이, 점찰법회는 신라시대에 참회 수행하는 의식으로 설행되다가 고려시대에는 점차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회로 변화되었던 것 같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점찰법회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지 않고, 중생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성행하였다.
· 집필자 : 이종수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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