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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선

한글의리선
한자義理禪
유형역사
키워드조사선, 여래선, 백파 긍선, 초의 의순, 선문논쟁, 삼종선
시대조선 후기
관련인물편양 언기, 백파 긍선, 초의 의순, 진하 축원
19세기에 백파 긍선이 선을 분류한 삼종선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의 선
의리선(義理禪)은 문자나 의리와 관련된 선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앞서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는 “선문에서는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해 교학을 빌려 종지를 밝혔다. 이른바 성(性)과 상(相)과 공(空)의 3종으로 이치와 말의 길, 듣고 이해하는 생각이 있기에 원돈문(圓頓門)의 사구(死句)가 되므로 이는 격외선(格外禪)이 아닌 의리선이다.”라고 하여, 교를 포함한 의리선이 격외선보다 낮은 차원임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격외선과 의리선은 정해진 뜻이 없고 오직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른 것이다.”라고 하여 근원적인 동일성과 사람에 따른 차이를 인정했다. 19세기 선문논쟁의 빌미를 준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은 『선문수경(禪文手鏡)』에서 선을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 3종으로 나누어 차등적으로 분류했다. 그는 앞의 조사선과 여래선은 격외선임에 비해 마지막 의리선에 대해서는 교학과 문자의 습기를 벗어나지 못한 가장 낮은 단계의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선과 교에 차별을 둔 것으로 여래선을 조사선과 같은 격외선으로 올림으로써 교로부터 여래선의 자격을 박탈하고 의리선에 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에서 근기의 우열에 따라 선을 차등화함은 잘못이며,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과 여래선,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과 의리선으로 방편상 구분하는 것이 전통적 통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사선은 언교(言敎)에 말미암지 않고 부처로부터 이심전심으로 이어진 격외선이고, 여래선은 부처의 법문으로 언교와 의리로 깨달아 들어가고 말로 이치를 증득하는 의리선이며, 양자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선문논쟁의 끝을 장식한 진하 축원(震河竺源, 1861~1926)은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에서 기존 논쟁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긍선이 의리선을 교승(敎乘)으로 본 것은 이사융즉(理事融卽)의 원돈교를 선에 배당한 것으로서 잘못이며, 조사선과 여래선, 의리선은 모두 교(敎)가 아닌 ‘교외’임을 강조했다. 다만 의리선은 격(格)이고 조사선과 여래선은 ‘격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조선 후기에는 조사선=격외선, 여래선=의리선의 조합이 일반적이었다. 조사선의 우위를 강조하거나 여래선과의 근원적 일치를 주장하는 등 입장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선과 교의 이중구조가 확립된 상황에서 비롯된 이해였다. 19세기 선문논쟁은 백파 긍선이 여래선을 조사선과 함께 격외선에 넣고 의리선을 그 하위 단계로 설정하여 교학에 대한 선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비판한 초의 의순은 조사선과 여래선의 근원적 일치와 선과 교의 동등함을 전제로 격외선=조사선, 의리선=여래선의 전통설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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