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실상산문 |
|---|---|
| 한자 | 實相山門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선종구산, 구산선문, 실상사 편운화상탑, 수철화상탑비, 수철화상탑, 실상사 증각대사탑, 증각대사탑비 |
| 시대 | 신라하대 ~ 고려시대 |
| 공간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실상사 (입석리) |
| 관련장소 | 실상사(實相寺) |
| 관련인물 | 홍척(洪陟), 수철(秀澈), 편운(片雲), 현욱(玄昱) |
신라하대 홍척이 실상사에서 개창한 산문으로, 소위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된 산문
실상산문은 신라하대 홍척(洪陟)이 남원 지리산 실상사(實相寺)에서 개창한 산문이다. 소위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하였다. 실상산문의 개산조인 홍척은 출가한 뒤 800년경 당나라로 들어가 서당 지장(西堂智藏)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826년경 귀국하였다. 홍척은 선종이 수용되던 초기인 신라하대에 남종선을 수용한 인물로 주목된다. 귀국 이후 홍척은 남악(지리산) 실상사에 주석하며 산문을 개창하였다. 홍척은 흥덕왕과 선강태자(宣康太子)의 귀의를 받았으며, 흥덕왕은 홍척을 국사로 책봉하였다. 홍척이 실상사에 주석하면서 실상사에는 주요 불전과 철불·석탑 등이 조성되었으며, 홍척의 문하로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봉림산문의 개산조로 추앙된 현욱(玄昱)도 있었다. 840년 무렵 홍척이 입적하자 문성왕의 명으로 실상사에 승탑과 탑비가 건립되었다.
홍척의 제자로는 수철(秀澈, 815~893)·편운(片雲, ?~910) 등이 있는데, 수철은 홍척이 입적한 실상사에 주석하며 실상산문을 이끌었다. 수철은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김씨이나 조부 때부터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진골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가 후 실상사에서 홍척의 법을 이었고, 경문왕·진성여왕 등 경문왕계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국사로 책봉되었다. 893년(진성여왕 7) 법운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보이나 장례는 실상사에 거행되었고, 그의 승탑과 탑비 역시 최종적으로는 실상사에 조성됨으로써 홍척-수철로 계승되는 실상산문의 법맥을 형성하였다.
한편, 수철 입적 이후 홍척의 또 다른 제자인 편운이 어느 시기엔가 실상산문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상사 조계암(曹溪庵)터에 조성된 편운의 승탑에는 ‘정개(正開)’라는 후백제 연호가 있어 주목된다. 편운은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홍척이나 수철과 달리 후백제 견훤의 후원으로 실상사에 주석하여 산문을 이끌었다. 실상산문은 고려시대 선종 구산문을 정립할 때 구산 중 하나로 꼽혔으나, 산문 자체는 고려시대에 쇠락했던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강호선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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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마음으로 실상산(實相山) 조사, 아홉 해 동안 몸을 바르게 가진(九夏持身) 홍척 국사(洪陟國師)님께 귀명하고 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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