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신인종 |
|---|---|
| 한자 | 神印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중신종, 중도종, 교종, 선교양종, 명랑 |
| 연도 | 1407년(태종 7) 이전 |
| 시대 | ~조선 초기 |
| 관련장소 | 청주 보경사, 함흥 군니사, 임실 진구사, 익주 미륵사 등 |
조선 초기 11개 불교 교단종파 가운데 하나로 밀교 계통 종파
신인종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당나라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는 신라의 명랑(明朗)에 연원을 둔 종파이다. 하지만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 종파로서의 구체적 존재 양상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초기 실록 기록에 다시 등장하는데, 태종 대에 불교의 11개 종파를 7개로 축소할 때 중도종(中道宗)과 합쳐져 중신종(中神宗)이 되었다. 그 뒤 세종 대에 기존 종파가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되면서, 화엄종(華嚴宗)·자은종(慈恩宗)·시흥종(始興宗)과 함께 교종에 합쳐졌다.
신인종의 조사로 비정되는 명랑은 삼국통일 직후인 674년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침략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경주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당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임시로 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로 다섯 방위의 신상(神像)을 만들었다. 그리고 문두루비법으로 기원을 하자 당나라 군선이 모두 침몰했다고 하며, 사천왕사는 679년(신라 문무왕 19)에 완성되었다.
이후 고려 초기에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이 문두루비법을 써서 적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태조 왕건(王建)이 현성사(現聖寺)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처럼 여러 정황상 고려시대에도 명랑을 계승한 밀교 계통의 종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상 자세하고 명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에 들어와 태종 때에 불교 정책이 본격화되었는데, 1406년(태종 6) 11개 종파에 속한 242개 사찰이 공식 승정 체계 안에 편입되었다. 11개 종파는 신인종을 비롯해 조계종(曹溪宗)·총지종(摠持宗)·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법사종(法事宗)·화엄종·도문종(道門宗)·자은종·남산종(南山宗)·시흥종·중도종이었다. 이때 신인종과 중도종에는 모두 30개의 사찰이 지정되었다.
이어 1407년에는 11개 종파가 다시 7개로 통합되었는데, 시흥종·조계종·자은종은 그대로 이어졌고 신인종은 중도종과 합쳐서 중신종이 되었다. 천태소자종과 천태법사종은 천태종으로, 총지종과 남산종은 총남종(摠南宗)으로 합쳐졌으며 도문종은 화엄종에 포함되었다. 이때 242사 가운데 88개의 읍내 자복사(資福寺)를 명산대천의 사찰로 대체했는데, 중신종에서는 임실 진구사(珍丘寺), 함흥 군니사(君尼寺), 아주 동림사(桐林寺), 청주 보경사(菩慶寺), 봉화 태자사(太子寺), 고성 법천사(法泉寺), 배주 견불사(見佛寺), 익주 미륵사(彌勒寺) 등이 새로 승정 체계 안의 지정 사찰이 되었다.
중신종은 세종 대인 1424년(세종 6) 7개 종파를 다시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화엄종·자은종·시흥종과 함께 교종에 속하게 되었다. 이로써 종파로서의 신인종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 교리와 전통 또한 교종 안에 귀속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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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諱明郞…(중략)…唐將李勣統大兵 合新羅 滅高麗後 餘軍留百濟 將襲滅新羅 羅人覺之 發兵拒之 高宗聞之赫怒 命薜邦 興師將討之 文㱏王聞之懼 請師開秘法禳之事在文武 王傳中因玆爲神印宗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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