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시흥종 |
|---|---|
| 한자 | 始興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오교양종, 소승, 열반, 교종, 선교양종 |
| 연도 | 1424년(세종 6) 이전 |
| 시대 | ~조선 초기 |
| 관련장소 | 연주 오봉사, 연풍 하거사, 고흥 적조 |
조선 초기 11개 불교 종파 가운데 하나로 소승종이나 열반종으로 추정되는 교종 종파
조선 초까지 존재한 교종 종파로 소승종(小乘宗) 아니면 열반종(涅槃宗)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독립된 종파로서 소승종이나 열반종의 존재는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지만, 소승업(小乘業)은 불교 교학의 토대를 이루는 『구사론(俱舍論)』 등을 배우는 것이었고 열반학(涅槃學)은 고려시대에 오교(五敎) 안에 들기도 했다. 시흥종은 태종 대에 승정 체제에 들어간 종파 가운데 하나였으며, 세종 연간에 선교양종(禪敎兩宗) 체제가 성립하면서 교종으로 통합되었다.
소승업은 인도의 조사 세친(世親)이 지은 『구사론』을 근본으로 하므로 구사종(俱舍宗)이라고도 한다. 『구사론』은 진제(眞諦, 499~569)와 현장(玄奘, 602?~664)의 한역본이 있으며, 신라 때부터 불교 교학을 공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논서였다. 한국불교사에서 열반학은 고구려의 승려 보덕(普德)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나온다. 『열반경(涅槃經)』에 정통했던 그는 고구려 보장왕이 도교를 존중하자 650년에 백제로 가서 완산주에 머물며 열반학을 강의했다. 당시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가 찾아가서 그에게 배웠다고도 한다. 하지만 열반종이 이후 종파로서 성립되었는지는 불분명하며, 고려 후기의 오교가 계율(戒律)·법상(法相)·법성(法性)·원융(圓融)·열반이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태종 대에 승정 체제의 전면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1406년(태종 6) 11개 종파의 242개 사찰이 편제되었다. 이때 11개 종파는 조계종(曹溪宗)·총지종(摠持宗)·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화엄종(華嚴宗)·도문종(道門宗)·자은종(慈恩宗)·중도종(中道宗)·신인종(神印宗)·남산종(南山宗), 그리고 시흥종이다. 시흥종에는 10개 사찰이 지정되었고 보유 토지 및 노비의 수도 정해졌다.
이듬해인 1407년에는 11개 종파가 7개로 축소 통합되었다. 천태소자종과 천태법사종은 천태종으로, 중도종과 신인종은 중신종(中神宗)으로 합쳐졌다. 총지종과 남산종은 총남종(摠南宗)이 되었고, 도문종은 화엄종에 포섭되었다. 이때 시흥종은 조계종, 자은종과 함께 그대로 존속되었다. 한편 242사 가운데 고려 이래로 각 지역에서 권위를 가져온 읍치의 자복사(資福寺) 88개를 산수가 뛰어난 곳의 명찰로 대체했다. 시흥종의 경우 연주 오봉사(五峰寺), 연풍 하거사(霞居寺), 고흥 적조사(寂照寺) 세 곳이 새로 지정되었다. 이후 세종 대인 1424년(세종 6)에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불교 종파를 통폐합하면서 시흥종은 화엄종·자은종·중신종과 함께 교종에 편제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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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는 前章에 五敎(華嚴宗·慈恩宗·摠南宗·中神宗·始興宗) 兩宗(曹溪宗·天台宗)의 歷史를 略述하엿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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