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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문

한글수미산문
한자須彌山門
유형역사
키워드진철대사 이엄
시대고려시대
공간황해도 해주시 수미산
관련장소광조사(廣照寺)
관련인물진철대사 이엄(眞澈大師 利嚴)
나말여초 성립된 선종 산문으로 구산문 중 가장 늦게 개창된 산문
수미산문(須彌山門)은 진철대사 이엄(眞澈大師 利嚴, 870~936)이 창건한 산문으로, 932년(태조 15) 해주 수미산에 고려 태조가 광조사(廣照寺)를 짓고 이엄을 주지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선종의 구산문 중 가장 늦게 개창되었으며, 다른 산문들과 달리 고려에서 개창하였다. 또한 다른 산문들이 지방 세력들의 후원을 토대로 개창하고 성장했던 것과 달리 수미산문은 국왕 고려 태조의 후원으로 성립되었다. 대경대사 여엄(大鏡大師 麗嚴), 선각대사 형미(先覺大師 逈微), 법경대사 경유(法鏡大師 慶猶)와 함께 사무외사(四無畏士)로 불리는 진철대사 이엄은 870년(경문왕 10) 충남 태안 지역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 선조는 경주 출신으로 신라 왕족이라 하지만 어느 시기엔가 가계가 몰락하여 지방세력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2세에 충남 가야산 보원사(普願寺)로 출가하여 화엄을 공부하였다. 896년(진성여왕 10) 당에 들어가 운거 도응(雲居道膺)의 법을 이었다. 도응이 입적하자 중국 각 지역을 다니다 911년(효공왕 15) 귀국하였다. 귀국 후 김해(金海)에 머물며 김해 지역의 호족인 소율희(蘇律熙)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으나, 후삼국의 혼란을 겪으며 김해를 떠나 여러 지역으로 옮겨다녔다. 923년 무렵 고려 태조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가 사나내원(舍那內院)의 주지로 있던 중 932년 태조가 광조사를 짓고 이엄을 주지로 삼았다. 이것은 고려 초 서해안을 장악하는 요충지로서의 해주의 중요성과 관련이 있다. 태조는 광조사를 개창하고 이엄을 주지로 삼으며 크게 후원하였다. 태조는 이엄을 광조사로 초빙하면서 패서(해주) 지역의 호족인 박수문(朴守文)과 충주 지역 호족으로서 선승들과 밀접한 관계였던 유권열(劉權說)을 파견하여 이엄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또한 광조사는 세 곳에 장원을 경영할 정도로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936년 이엄이 입적하자 937년(태조 20) 왕명으로 광조사에 진철대사 이엄의 탑비가 세워졌다. 이엄의 제자로는 처광(處光), 도인(道忍), 정비(貞朏) 등이 있다. 고려시대 구산문이 성립되면서 수미산문도 구산문 중 하나가 되었으나 주요 산문이 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179년(명종 9) 작성된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 음기 문도 명단에 ‘수미산하(須彌山下)’로 표시된 4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규보가 지은 「담선회수미산참학등알조사진문(談禪會須彌山參學等謁祖師眞文)」이 남아 있어, 적어도 13세기 초까지는 산문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강호선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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