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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치

한글선정일치
한자禪靜一致
유형역사
키워드삼문, 염불문, 청허 휴정, 편양 언기
시대(중국) 송대 이후 / 고려~조선
관련인물여산 혜원, 영명 연수, 청허 휴정, 편양 언기
수행의 측면에서 선종과 정토를 향한 염불이 다르지 않다는 이해
중국에서는 남북조 때 동진(東晋)의 여산 혜원(廬山慧遠, 334~416)이 백련사(白蓮社) 결사를 조직하고 아미타불에 대한 관상(觀想) 수행을 중시하면서 정토(淨土)신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담란(曇鸞)이 염불의 이론을 정립했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 염불을 쉬운 수행의 길로서 강조했다. 이어 도작(道綽)과 선도(善導)가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에 기대는 타력신앙을 내세우며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당나라 말부터 폐불 조치 등으로 교종이 쇠퇴하고 선종이 불교계의 주류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선과 정토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북송대 선종 5가의 하나인 법안종(法眼宗)의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에 의해 선정(禪淨)일치가 주창되었다. 연수는 일심(一心)을 종(宗)으로 삼고 이(理)와 사(事)의 측면에서 선정(禪淨)쌍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종경록(宗鏡錄)』과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에서 선과 정토의 근원을 불성(佛性)이 내재한 진심(眞心)으로 규정하고 ‘자성미타(自性彌陀) 유심정토(唯心淨土)’에 기반한 선정일치를 주장했다. 이는 정토로의 왕생을 자력에 의한 깨달음의 길로 파악한 염불선(念佛禪) 수행으로서 기존의 타력적 정토신앙과는 구별된다. 아미타 정토신앙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민간에 널리 퍼져 나갔다. 선과 정토의 일치와 겸수 주장은 고려 말에 가면 본격화되는데,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만 해도 염불을 수행방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교화의 방편으로 신앙으로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원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선승들이 중국에서 유행하던 염불선적 경향에서 영향을 받아 선 수행의 일환으로 염불을 강조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은 “참선과 염불은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라고 하여, 수행으로서 염불선의 측면을 강조했다. 휴정의 동문인 부휴 선수(浮休善修)도 선정일치의 입장에서 선과 함께 염불을 중시했다. 17세기 전반에는 경절문(徑截門), 원돈문(圓頓門), 염불문(念佛門)의 삼문(三門) 체계가 정립되면서 수행의 영역 안에 선, 교와 함께 염불이 포섭되었다. 염불문은 자력에 의한 염불선 수행을 용인한 것으로 정토를 마음에 투영시켜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목표로 했다. 휴정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는 염불문에 대해 “서방의 정토를 염상하는 염불법으로 마음이 곧 부처이며 자성이 바로 미타”라고 설명했다. 18세기 후반 진허 팔관(振虛捌關, ?~1782)의 『삼문직지(三門直指)』(1769)에서는 “경절문, 원돈문, 염불문의 삼문을 통해 심성을 바로 깨닫고 법계(法界)에 증득해 들어가며 정토에 왕생한다. 삼문은 비록 다르지만 그 요체는 같다.”라고 하여 삼문의 근원적 일치를 강조했다. 여기서 염불문이 확고히 정착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당시 교학의 종장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도 염불문을 ‘선정자력문(禪定自力門)’이라고 하여 염불선의 수행론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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