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적종 |
|---|---|
| 한자 | 禪寂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구산선문, 조계종, 선종 |
| 시대 | 고려시대 |
고려시대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구산선문의 다른 이름
선적종(禪寂宗)은 그 명칭을 통해 추정할 수 있듯이 선종의 다른 이름으로 추정된다. 선적종이라는 표현은 의천(義天, 1055~1101)의 묘지명인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興王寺大覺國師墓誌銘)」에 처음 나온다. 그 내용에서 “불교를 배우는 자에게 있어서 계율종(戒律宗), 법상종(法相宗), 열반종(涅槃宗)·법성종(法性宗)·원융종(圓融宗)·선적종이 있는데, 국사는 이 여섯 종을 모두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여섯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선적종이 처음 등장하고 이후의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고려사』 선종 원년(1084)의 기록에 “보제사 승려 정쌍 등이 아뢰기를, ‘구산문에서 수행하는 승도(僧徒)를 진사(進士) 선발의 예에 따라 3년에 1회 선발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구산문은 선(禪)의 문파를 말한다. 동시대의 문헌인 『고려사』에서는 ‘구산문’이라고 하였고,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에서는 ‘선적종’이라고 하였으므로,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당시 구산문을 선적종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고려 전기에 선적종이 있었는데 곧 영명 연수의 법안종(法眼宗)의 일파이다.”라고 하였다. 즉 그는 고려 초기 중국 선종의 일파인 법안종을 전래해 온 일파를 선적종으로 보았던 것 같다. 이에 비해 포광 김영수는 ‘선적종이 곧 구산이고 구산이 곧 선종’이라고 하였다. 선문구산 전체를 선적종으로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견해는 문헌이 부족하여 누가 옳은지 판정할 수 없으나 선적종이 11세기 선문을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우리나라 선종은 8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북종선이 전래되기도 했으나, 9세기에 남종선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어 지방 각지에 선문을 세우면서 시작되었고, 신라 말 정치적 변동 속에서 그 세력을 넓혀 갔다. 고려 건국 이후 구산문이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다가 12세기 이후 조계종으로 통칭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11세기에 구산문 전체 혹은 법안종의 일파가 선적종으로 불리다가 12세기에는 조계종으로 통칭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 집필자 : 이종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