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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찰

한글삼보사찰
한자三寶寺刹
유형역사
키워드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시대19세기 이후
관련장소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는 세 사찰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을 세 가지 보물인 삼보(三寶)라고 한다. 삼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진 통도사(通度寺), 고려대장경이 있는 해인사(海印寺),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松廣寺)를 가리킨다. 삼보사찰 또는 삼보종찰(三寶宗刹) 관념은 19세기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록상 홍석주(洪奭周, 1774~1842)의 「송광사유산록(松廣寺遊山錄)」(1828)에서 처음 확인된다. 19세기 후빈 『동사열전(東師列傳)』의 편자인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은 사료 조사와 수집을 위해 다니면서 ‘조계(曹溪), 가야(伽倻), 취령(鷲嶺)의 종찰’을 순례했다고 하는데, 이는 조계산 송광사·가야산 해인사·영취산 통도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각각 승보(僧寶)·법보(法寶)·불보(佛寶) 종찰로 인식되었다. 통도사에는 삼국시대 때 신라의 자장(慈藏)이 중국에서 가져와 황룡사(皇龍寺)에 안치했던 진신사리가 이후 봉안되었다. 해인사에 고려의 재조대장경이 보관된 것은 조선 태조 때 강화도에 있던 대장경판이 서울의 지천사(支天寺)를 거쳐 옮겨지면서부터이다. 송광사는 이미 17세기 전반부터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이후 16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19세기에 삼보사찰이 자리 잡은 이후에는 ‘삼보종(三寶宗)의 복전(福田)’이라고도 불렸다. 1899년에는 고종이 칙명으로 해인사의 대장경을 3부 인출하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에서 보관하게 하였다. 이는 삼보사찰 관념이 이미 확고히 정착했음을 보여 준다. 1911년에 설립된 임제종(臨濟宗)도 종무원은 범어사(梵魚寺)에 두었지만 삼보사찰을 본사로 하였고, 조선총독부의 본말사법에서도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각각 불찰(佛刹)대본산, 법찰(法刹)대본산, 승찰(僧刹)대본산으로 지정했다. 이처럼 삼보사찰 관념은 오랜 불교 전통의 역사적 권위를 담은 이들 사찰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도서 김용태 | 성남: 신구문화사 | 2010 상세정보
  • 조선불교통사
    도서 이능화 | 경성: 신문관 | 1918 상세정보
  • 한국 불교계 삼보사찰의 성립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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