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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

한글사자산문
한자獅子山門
유형역사
키워드쌍봉사, 흥녕사, 철감선사 도윤, 징효대사 절중, 구산문
시대신라하대~고려시대
공간강원 영월군 수주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관련장소쌍봉사(雙峯寺), 흥녕사(興寧寺)
관련인물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 징효대사 절중(澄曉大師 折中)
철감선사 도윤을 개산조로 하는 신라하대에 개창된 선종 산문
사자산문(獅子山門)은 신라하대에 성립된 선종 산문 중 하나이다. 개산조는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 798~868)으로 전하나 그의 제자인 징효대사(澄曉大師) 절중(折中, 826~900)이 실제 개창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 사자산문은 도윤―절중으로 법통이 이어지며 쌍봉사(雙峯寺)에서 시작했으나 흥녕선원(興寜禪院)이 중심 사찰이 되었다. 사자산문이라는 산문의 이름도 흥녕선원이 있는 사자산에서 유래하였다. 도윤은 오늘날의 황해도 호족 출신으로 18세에 출가하여 화엄을 공부하였다. 825년(헌덕왕 17) 선을 배우기 위해 당으로 유학을 떠나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보원 입적 후에도 중국 각지를 다니며 수행하다 회창폐불이 일어나 847년(문성왕 9) 귀국하였다. 귀국 후 금강산에 머물며 경문왕의 귀의를 받았으며, 이 무렵 무주(전남 화순) 쌍봉사로 옮겨 활동하다 입적하였고, 그의 승탑과 탑비는 왕명으로 쌍봉사에 건립되었다. 도윤의 문도로 절중과 훈종장로(訓宗長老) 등이 있으며, 고려 태조가 왕사로 책봉한 법경대사 경유(法鏡大師 慶猶)는 훈종장로의 제자이다. 절중도 오늘날의 황해도 출신으로 출가 후 부석사(浮石寺)에서 화엄을 공부하였다. 도윤이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물 때 찾아가 선을 배웠다. 이후 각지를 유력하다 사자산의 운예선사(雲乂禪師)의 청으로 흥녕선원에 머물렀으나, 후삼국기에 계속된 전란으로 스승 도윤이 머물렀던 쌍봉사로 옮겼다. 이후 동림사(桐林寺)에도 주석했으나 전란으로 강화도 은강선원(銀江禪院)으로 옮겼다가 강화도에서 입적하였다. 절중의 승탑은 동림사에 조성되었고, 이때 같이 세우지 못했던 비석은 입적 후 44년이 지난 고려 2대 임금인 혜종 대에야 비로소 흥녕사에 건립되었다. 절중의 비석 건립에는 당시 충주 지역의 유력 호족이자 광종의 외가였던 충주 유씨의 후원이 있었다. 사자사문은 쌍봉사에서 시작되었으나, 고려 초 절중의 문도들이 광종과 충주 유씨의 후원으로 흥녕선원에 스승의 비석을 조성하면서 사자산문의 중심 사찰은 자연스럽게 흥녕선원이 되었고, 이후 고려시대 구산문을 정립하면서 사자산문은 도윤을 개산조로 하면서도 중심 사찰은 흥녕선원으로 파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자산문의 변화 과정은 신라하대 선종 산문의 성립과 구산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주목된다. 한편 사자산문은 고려 초 이후에는 중심 산문이 되지 못하면서 점차 쇠락한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강호선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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