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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언해

한글불전언해
한자佛典諺解
유형역사
키워드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간경도감, 염불보권문
시대조선
불교 경전 등을 한글로 풀어서 번역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
불전(佛典)은 경전을 비롯한 불교 전적을 뜻하고 언해(諺解)는 한글 창제 이후 한문 등 외국어를 국어로 옮기고 한글로 기록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가리킨다. 한글이 만들어진 직후에는 불전이 주로 언해의 대상이 되었고, 그 외에는 15세기 말의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 정도만 있다가, 16세기가 되어서야 김안국의 『정속언해(正俗諺解)』(1518), 『소학언해(小學諺解)』(1586)와 『논어언해(論語諺解)』(1588) 등이 나왔다. 초기에는 역해(譯解)·번역(飜譯)·번서(飜書)·언석(諺釋) 등의 여러 용어가 쓰이다가 17세기 이후에 ‘언해’로 통일되었다. 한글이 창제되고 제일 처음 기록된 책은 불서였다. 1447년(세종 29) 세종의 명을 받은 수양대군이 모후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쓴 『석보상절(釋譜詳節)』이 최초의 언해불서였다. 석가의 일대기를 정리한 이 책은 한문 원문이 없이 국한문 혼용의 언해문으로 되어 있고 대신 한자에는 독음을 달았다. 이를 보고 세종이 운문으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1449)을 지었고, 양자를 합편한 『월인석보(月印釋譜)』(1459)가 간행되었다. 언해불서의 편찬은 15·16세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시기별로 편찬 배경과 텍스트의 내용 및 성격에서 차이를 보인다. 15세기에는 국가가 승도 수와 승정(僧政) 체제, 사원의 경제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불교 정책을 펼쳤지만, 불교의 기반은 여전히 강고했고 일반민뿐 아니라 사대부 계층에서도 불교신앙이 유지되었다. 16세기 이후에는 관청이 아닌 사찰에서 주로 불서를 간행했는데, 16세기 언해불서는 선종 서적의 비중이 커졌고 경전 주석서 대신 밀교 관련 불서가 추가되는 등 시대에 따른 불교계의 변화 양상을 반영한다. 한글 제작 후 『석보상절』을 시작으로 언해불서가 만들어진 것은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불교를 이용해 대중을 교화하고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것으로, 유교국가의 틀 안에서 통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불교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세조 때에 설립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언해불서를 펴낸 것은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승려 교육도 불전언해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간경도감은 1461년(세조 7)에 설치되어 1471년(성종 2년) 폐지될 때까지, 약 37종의 한문 불전과 9종의 언해불서를 간행했다. 조선 후기에 나온 언해불서로는 불교의 관점에서 효를 강조한 『부모은중경언해(父母恩重經諺解)』, 정토왕생의 염원을 담은 『권념요록(勸念要錄)』·『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 그리고 내세신앙과 관련된 『지장경언해(地藏經諺解)』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책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한 신앙 외에도 윤리 규범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교화서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이 시기에는 주로 이전에 나온 언해불서가 복각·유통되었는데, 수행 체계로서 염불문(念佛門)의 정립과 염불신앙의 확산을 반영하여 『권념요록』과 『염불보권문』 같은 정토 관련 서적은 새로 만들어졌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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