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법성종 |
|---|---|
| 한자 | 法性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화엄종 |
| 시대 | 고려시대 |
| 관련인물 | 대각국사 의천(義天) |
고려시대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화엄종의 다른 이름.
법성종(法性宗)의 의미는 불교 교학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불교 교학적 의미에서는 당나라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이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에서 “대승의 교법에는 모두 3종(宗)이 있는데, 법상종(法相宗)·파상종(破相宗)·법성종이다.”라고 한 내용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법상종과 파상종은 초학자 및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법성종은 오래 공부했거나 상근기를 가진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역사적 의미에서 법성종은 고려시대의 종파였다. 의천(義天, 1055~1101)의 묘지명인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興王寺大覺國師墓誌銘)」에 “불교를 배우는 자에게 있어서 계율종(戒律宗), 법상종(法相宗)·열반종(涅槃宗)·법성종·원융종(圓融宗)·선적종(禪寂宗)이 있는데, 국사는 이 여섯 종을 모두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법성종은 고려시대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된다.
교학적 의미나 역사적 의미에서 법성종은 대체로 화엄종을 의미하였다. 법성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당나라 법장이 화엄의 종파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유식학을 법상종이라 지칭한 데서 비롯한다. 즉 유식학이 법의 현상[相]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화엄학은 법의 본성[性]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려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법성종은 화엄종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엄종은 의상(義相, 625~702)을 종조(宗祖)로 하며 신라 말에 종파적 조직을 갖춘 이래 조선 초까지 법상종과 더불어 교종을 대표하는 종단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선종의 조계종과 더불어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종단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재편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법상종을 후원하던 인주 이씨 가문의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화엄종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무신 집권기에 화엄종에서 최충헌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여 800여 명의 승군이 학살당하는 등 위기도 있었으나 무신 집권자들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화엄종을 배제하지 않고 포섭하였다. 원(元) 간섭기 이후 『화엄경』에 등장하는 법기보살이 금강산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 퍼지는 등 화엄종에 대한 국가와 백성의 지지는 공고하였고, 화엄종 승려들이 지속적으로 국사에 임명되었다.
· 집필자 : 이종수
용례
-
또 적광토寂光土의 뜻을 밝히고 여래장如來藏을 설명하여 무명無明의 뿌리를 제거하고 탐애貪愛의 근본을 구명하였으며, 육문六門을 통해서 부처를 이루고 오교五敎를 통해서 진여眞如를 증득하게 하였으니, 이는 법성종法性宗의 본말本末을 드러낸 것입니다.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