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대처승

한글대처승
한자帶妻僧
유형역사
키워드한용운, 백용성
연도1926년
시대20세기
처를 거느린 승려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유행한 말
불교 계율에서는 출가자인 승려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그대로 지켜졌다. 한국에서도 교단이 생기고 계율이 정비된 이래 승려는 독신으로 출가자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화와 근대화를 지상의 과제로 삼으면서 부국강병과 식산흥업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1872년 승려의 육식과 대처를 각자의 뜻에 맡긴다는 「승려대처육식허가령[僧侶の肉食妻帶勝手たるべし]」이 내려져 근대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한 불교계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런데 일본불교의 최대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은 원래부터 결혼한 재가 승려의 세습을 인정했고, 에도시대에는 어느 정도 불교의 세속화가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승려의 대처 문제가 전통의 전면 해체를 뜻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변화는 아니었다. 이렇게 메이지 이후 일본의 승려는 속성을 가진 국민이 되었고 승려도 사회적 직업의 하나가 되었다. 일련종(日蓮宗)의 다나카 지카쿠(田中智學)는 『불교부부론(佛敎夫婦論)』(1887)에서 종교 및 윤리의 근본이자 사회조직의 기초인 부부를 단위로 불교의 대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불교에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전제하에, 부부를 매개로 불교의 생활화·사회화를 추구했다. 한국에도 문명개화론과 사회진화론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결혼을 인구 증식이나 생산, 교세의 발전과 연결한 일본불교의 근대화 지상주의가 영향을 미쳤다. 1910년 4월에는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통감부에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계율은 시대에 맞으면 되므로 결혼이 불교에 이익이 된다면 시대 조류에 따라 승려가 결혼해도 된다고 보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1911년의 사찰령과 1912년 본말사법에서 대처식육하는 승려는 비구계를 받을 수 없고, 본말사의 주지가 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1926년 1월에는 총독부에서 승려 대처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 각지의 사찰을 시찰했고, 3월에는 대처승에게 본말사 주지 자격을 허용하는 사법 개정 요구가 본사 주지 중심의 교무원 평의원회에서 결의되었다. 이 무렵 총독부에서 사법의 개정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5월에 백용성(白龍城, 1863~1940)이 주도하고 127명의 승려가 참여하여 계율에 위반되는 대처식육 금지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백용성은 9월에도 ‘범계 생활 금지’에 관한 건백서를 다시 냈는데, 불교의 출가 전통을 수호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청정 비구와 대처 승려의 구분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총독부에서는 1926년 10월에 사찰령 3조에 근거한 본말사법의 취처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법을 개정해 승려의 대처식육을 허용했다. 이후 1929년에는 대다수 본산에서 대처승도 주지가 될 수 있도록 본말사법을 수정했다. 이 시기에 비구승 가운데 반 정도가 이미 일본불교의 풍조를 따라 대처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수는 점차 더 늘어났다. 법적 규제가 없어짐에 따라 본사 주지의 많은 수가 대처를 하게 되었고, 일본 유학승 출신도 결혼을 선진적이고 근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식민지 시기에는 사찰령 체제와 정치적 종속하에서 불교가 대처식육과 같은 세속화의 길로 내몰렸고,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겼다. 해방 후 1954년에 시작된 불교 정화는 친일불교 청산과 수행 전통의 회복이라는, 일제 잔재의 척결을 명분으로 삼았다. 다만 청정 비구의 선명성과 명분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화는 급조승 유입과 승려의 인적 자질 하락, 교학과 의례 등 다양한 불교 전통의 단절이라는 부정적 결과도 수반했다. 이 또한 식민지 유산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또 그 청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 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 한국근대불교사론
    도서 오경후 | 서울: 문현 | 2020 상세정보
  • 한국 근대불교 ‘대처식육’의 이원적 노선
    학술논문 김광식 | 일본불교문화연구 | 13 | 서울: 한국 일본불교문화학회 | 2015 상세정보
  • 1926년 불교계의 대처식육론과 백용성의 건백서
    학술논문 김광식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11 | 천안: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1997 상세정보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 모색과 정치적 세속화
    학술논문 김용태 | 불교연구 | 35 |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 2011 상세정보
  • 더보기  +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