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담선법회 |
|---|---|
| 한자 | 談禪法會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보제사, 구산선문, 성주산문, 가지산문, 수미산문, 총림, 호국불교, 조사예참, 승과, 보조국사 지눌 |
| 시대 | 고려 |
| 공간 | 개성, 강화 |
| 관련장소 | 보제사, 창복사, 용문사 |
| 관련인물 | 태조 왕건, 지눌 |
고려시대 선종 승려들이 모여 선을 수행하고 강론하던 불교의례
담선법회는 고려시대 선종 승려들이 모여 선을 수행하고 담론하던 불교의례이다. 고려만의 특징적인 불교의례이자 선종 승려들이 참여하는 선종의례이다. 담선법회는 고려 태조가 거란을 막기 위해 개경에서 개최한 것에서 시작되어 호국 불교의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3년 혹은 2년마다 봄에 개경의 보제사(普濟寺)에서 개설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보제사에서의 담선법회는 국가가 주재하는 정기적인 국가의례였다. 지눌이 승과를 보기 위해 개경에 올라왔다가 담선법회에 참여하였던 사례 등에 근거하여 선종의 승과와 관련된 행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려시대 담선법회는 성주산문, 가지산문, 수미산문 등 각 선문(禪門)에서도 개별적으로 개최하였다. 이는 고려 중기에 두드러진 현상인데, 담선법회가 열리기 1년 전 선문별로 법회를 열었으며 이를 ‘총림(叢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선문별 담선법회에서는 선문 소속 승려들이 역대 조사에게 예를 올리는 의식도 함께 거행하였다. 그리고 선종 서적을 강의하기도 했는데, 1179년(명종 9) 용문사(龍門寺) 중수 낙성의례로 열린 50일간의 담선법회에서는 단속사(斷俗寺) 효돈선사(孝惇禪師)가 『전등록(傳燈錄)』·『능엄경(楞嚴經)』·『설두염송(雪竇拈頌)』 등을 강의하였다. 이처럼 담선법회는 다른 종파와는 구분되는 선종만의 의례로서의 특수성이 있었으며, 선문 조사에 대한 계승의식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대몽항쟁기에 국가적인 불교의례로서의 담선법회는 더욱 적극적으로 개최되었다. 최우(崔瑀)의 주장에 따라 보제사 외에 광명사(廣明寺), 서보통사(西普通寺), 창복사(昌福寺), 대안사(大安寺) 등에서도 국가가 주관하는 담선법회가 개최되었고, 이는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호국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강화천도 후에는 담선법회의 호국적인 성격을 원에서 문제 삼으면서 1278년(충렬왕 12) 담선법회를 중단시켰다가 다시 개설을 허락해 준 적이 있었으나, 이후 국가의례로서의 담선법회는 성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담선법회는 조선 건국으로 그 전통이 단절되었다. 1394년(태조 3) 한양 천도 후 승려들이 담선법회 개설을 요청했으나, 도당(都堂)에서의 폐지 논의를 태조가 수용하면서 국가의례이자 불교 의례인 담선법회는 폐지되었다.
· 집필자 : 강호선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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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在壬寅正月 赴上都普濟寺 談禪法會 一日與同學十餘人 約曰罷會後 當捨名利 隱遁山林 結爲同社 常以習定均慧爲務 禮佛轉經 以至於執勞運力 各隨所任而經營之 隨緣養性 放曠平生 遠追達士眞人之高行 則豈不快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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