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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도량

한글관정도량
한자灌頂道場
유형역사
키워드밀교, 화엄경, 전륜성왕
시대고려시대
공간개성, 평양, 강화도
관련장소내원당(內願堂)
관련인물숙종(肅宗), 인종(仁宗), 묘청(妙淸), 강종(康宗), 원종(元宗), 충렬왕(忠烈王), 충선왕(忠宣王)
정수리에 물을 끼얹는 불교의식이자 고려시대에는 국왕의 즉위의례
관정도량은 정수리에 물을 끼얹는 불교의식인 관정(灌頂)을 하는 장소나 관정작법(作法)을 행하는 법회를 의미한다. 밀교의식이면서 고려시대에는 국왕 즉위의례로 개최되기도 하였다. 관정은 인도에서 제왕(帝王)이 즉위하거나 태자를 세울 때 정수리에 물을 붓던 의식이다. 관정은 대승불교에서 구지보살(九地菩薩)이 십지(十地) 법운지(法雲地)에 들어갈 때 제불(諸佛)이 지수(智水)를 보살의 정수리에 부음으로써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화엄경(華嚴經)』 등의 대승경전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전법의식으로 중시되었다. 밀교의례로서의 관정도량은 당대 밀교와 함께 동아시아로 전래되었다. 인도 밀교승려인 금강지(金剛智)는 719년(개원 7) 장안에 들어와 황제의 명으로 밀교의 관정도량을 개설하였다. 746년(천보 5)에는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不空)이 당에 들어와 황제와 관료들에게 관정을 수여하였다. 금강지나 불공의 관정도량은 금강정경(金剛頂經)계 경전에 근거한 의례였다. 이러한 관정도량은 고려에서도 개설되었으나 일반적인 밀교의례와는 달리 기양의례 혹은 국왕의 즉위의례로 개최된 것이 특징이다. 우선 『관정경(灌頂經)』에 근거한 기양의례로서의 관정도량이 열렸다. 1101년(숙종 6) 병란의 조짐을 막기 위해 관정도량을 열었던 것이 고려에서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록이다. 그리고 1127년(인종 5) 3월 서경에 행차했던 인종은 묘청(妙淸)의 요청으로 상안전(常安殿)에서 관정도량을 열었고, 1269년(원종 10)에는 강화도 궁궐에 있던 내원당에서 관정도량을 열었는데 각각 금, 그리고 원과의 대외관계 변화와 관련된 시기였다. 무신 집권기인 1212년(강종 원년) 1월 선경전(宣慶殿)에서 관정도량을 연 이후 관정도량은 국왕의 즉위의례에 포함되었다. 즉위의례로서의 관정도량은 강화천도기에도 계속되었다. 1260년(원종 원년) 원종은 즉위식에서 경녕전(慶寧殿)에 행차하여 관정의식과 함께 보살계를 받았으며, 원(元) 간섭기 충렬왕과 충선왕도 관정의식을 열었다. 고려시대 국왕의 즉위의례로서의 관정도량의 개설은 『화엄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같은 관정도량은 사찰이 아닌 궁궐에서 개최된 것이 특징이다. 국왕의 즉위의례로서의 관정도량의 경전적 근거를 『화엄경』·『불설륜왕칠보경(佛說輪王七寶經)』·『잡아함경(雜阿含經)』 등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의식을 개설하는 방식은 밀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 시작된 관정도량은 고려시대 기양의례 및 국왕의 즉위의례로 개최되었다. 관정도량은 새로 즉위하는 국왕에게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국왕권을 불교적으로 신성화하였다. 관정도량은 유교와 함께 국가 운영에서 중시되던 고려시대 불교의 역할과 위상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 집필자 : 강호선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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