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경절문 |
|---|---|
| 한자 | 徑截門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삼문, 원돈문, 염불문, 보조 지눌, 청허 휴정, 편양 언기, 삼문직지 |
| 시대 | 17세기 이후 |
| 관련인물 | 보조 지눌, 청허 휴정, 편양 언기, 진허 팔관 |
조선 후기 승려 수행 체계인 경절문·원돈문·염불문의 삼문 중 하나로 간화선 수행의 선문
17세기 전반에는 승려 교육과정과 함께 경절문(徑截門), 원돈문(圓頓門), 염불문(念佛門)의 삼문(三門) 수행 체계가 정비되면서 선과 교와 함께 염불이 포함되었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은 간화선(看話禪)을 우위에 둔 선과 교의 병행을 주장했는데, 더 나아가 선(경절문)과 교(원돈문)에 염불(염불문)을 더하여 삼문의 원형을 제시하였다. 이는 고려 이래의 선과 교는 물론 염불 등의 다양한 수행과 신앙 전통을 함께 계승해야 했던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삼문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휴정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였다. 그는 삼문을 격외(格外)선풍의 간화선, 본래의 마음을 비추고 되돌리는 교학, 자성미타(自性彌陀)의 염불선(念佛禪) 수행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사람의 근기가 다르고 그에 따라 방편도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불교의 법은 하나이며 선·교·염불 모두가 일심(一心)을 근원으로 하므로 같다고 보았다.
언기는 경절문에 대해 ‘근기가 높은 상근기를 위해 바로 마음을 가리키는 격외의 선풍’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조사의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때때로 깨닫고, 일어나는 의심을 분명히 알아서 느리게도 급하게도 하지 않으며 산란한 데도 떨어지지 않고 마치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잊지 않다가 마침내 한꺼번에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 오묘함을 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조선 후기의 삼문은 고려시대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 주창한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삼문과는 내용이나 성격이 다르다. 지눌의 삼문은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선교 융합을 기조로 하여 마지막에 간화선 수행을 배치한 것이다. 이에 비해 조선의 삼문은 간화선을 닦는 경절문은 같지만 원돈문은 교학 자체를 의미했고 지눌의 삼문에는 없는 염불문이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삼문 체계의 성립 이후 선과 교뿐 아니라 염불문도 수행방식으로 확고히 정착되었다. 18세기 후반 진허 팔관(振虛捌關, ?~1782)이 쓴 『삼문직지(三門直指)』(1769)에서는, “경절문, 원돈문, 염불문의 삼문을 통해 심성을 바로 깨닫고 법계(法界)에 증득하여 들어가며 정토에 왕생한다. 삼문은 비록 각기 다르지만 그 요체는 같다.”라고 하여 삼문의 근원적 동일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처럼 조선 후기 삼문 체계의 특징은 선, 교, 염불을 각각 전문적으로 닦으면서도 여러 수행방안을 용인하는 포괄적·융합적 수행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선과 교가 근원적으로 일치한다는 인식과 선교겸수의 방향에 대한 합의에서 비롯되었고, 그 위에 염불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한 방식이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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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佛諸祖 奇言妙句 良久捧喝 百千公案 種種方便 皆從斯出 銀山鐵壁 措足無門 石火電光 難容思議者也 此敎外別傳 禪旨所謂徑截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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