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대장도감 |
|---|---|
| 한자 | 大藏都監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고려대장경, 교장, 의천 |
| 연도 | 13세기 중반 |
| 시대 | 고려 후기 |
| 관련인물 | 수기(守其) |
고려시대인 13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재조대장경 조성을 총괄한 기관
고려는 대장경을 두 차례나 조성한 문화국가였다. 초조대장경은 1063년부터 1087년까지 6천여 권을 판각했고, 재조대장경은 1237년부터 시작하여 1248년에 일단락되었는데 모두 1,496종, 6,568권에 이르며 경판 수가 81,137판이어서 흔히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대장도감(大藏都監)은 이 재조대장경 조성을 총괄한 기관으로 교감 및 목록은 화엄종 승통(僧統)인 수기(守其)가 책임을 맡았다.
초조대장경이 판각된 뒤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송나라에서 경전이 아닌 한문 논소 3천여 권을 수집해 왔고, 여기에 요와 일본의 주석서와 고려에 현존하던 논소들을 모아 교장을 간행했다. 교장은 경·율·론으로 이루어진 대장경과는 달리 경전과 율장 등에 대한 동아시아 찬술 주석서인 논소만 모은 것으로 대장경 해설서의 성격을 가진다. 1091년(고려 선종 8) 화엄종(華嚴宗) 사찰인 개경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이 설치되어 10여 년간 교장의 책들이 간행되었다. 교장의 목록집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에는 총 1,010종 4,850여 권의 서명이 수록되었다.
재조대장경은 13세기 전반 대몽항쟁기 때 만들어졌다. 세계제국으로 팽창을 거듭하던 몽골군의 침입으로 고려는 1232년 강화도로 천도했는데, 당시 몽골군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있던 초조대장경 판목을 불태웠다. 이에 고려 정부는 1237년부터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거국적 불사를 벌여 대장경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대장경 제작을 총괄한 대장도감의 본사는 정부가 있던 강화도에 설치되어 계획 수립과 추진, 경비 조달 등을 담당했고 경상도 남해에 분사가 두어져 실제로 많은 판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대장경 판각은 1248년에 일단락되었고 1251년에 완성을 기념하는 경축 의식이 치러졌다. 수록된 경서의 내역은 대장목록에 기재되어 있는데, 경·율·론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고승의 전기와 같은 불교사서, 대장경 목록 등도 들어가 있다. 전적의 책임 교감 및 목록 작성은 화엄종 승통 수기가 주도했는데 거의 완벽한 교정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의 꼼꼼한 교감 과정은 『교정별록(校正別綠)』에 기재되어 있다. 송의 개보장(開寶藏)과 요의 거란장은 현재 인출본 일부만 전하고 있어 『교정별록』은 그 원형을 복원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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