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능침사 |
|---|---|
| 한자 | 陵寢寺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진전사원, 봉선사, 봉은사, 신륵사, 용주사, 흥천사 |
| 시대 | 조선 |
| 관련장소 | 개경사(開慶寺), 봉선사(奉先寺), 봉은사(奉恩寺), 신륵사(神勒寺), 흥천사(興天寺) 등 |
조선시대에 왕릉을 수호하고 선왕 선후를 추복하기 위해 세워지거나 지정된 사찰
능침사는 중국에서 불교 전래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성되었다. 고려에서는 국왕과 왕비의 진영을 봉안한 진전(眞殿)사원이 내세 추복의 기능을 주로 담당했다.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보호·관리하고 선왕 선후의 명복을 빌며 추천(追薦)의례를 하는 사찰의 명칭이 능침사뿐 아니라 능사(陵寺), 재궁(齋宮), 조포사(造泡寺)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조선 전기의 능침사는 왕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왕이 주도하여 왕릉 옆에 설치되었고 재궁이라고 했다. 건원릉(健元陵: 태조)의 개경사(開慶寺), 정릉(貞陵: 태조비 신덕왕후)의 흥천사(興天寺), 영릉(英陵: 세종)의 신륵사(神勒寺), 광릉(光陵: 세조)의 봉선사(奉先寺), 선·정릉(宣靖陵: 성종·중종)의 봉은사(奉恩寺)가 대표적이다. 능침사에는 사위전(寺位田)이 지급되었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이 주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조포사라는 명칭이 쓰였는데, 제수(祭需) 물품을 공급하여 왕릉의 제사를 돕는 역할을 주로 맡았고 능침사와 같은 큰 특혜는 없었지만 왕실 원당으로서의 혜택이 부여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나온 『묘전궁릉원묘조포사조(廟殿宮陵園墓造泡寺調)』에는 전주 조경묘(肇慶廟) 경기전(慶基殿)의 봉서사(鳳棲寺), 삼척 준경영경묘(濬慶永慶墓)의 천은사(天恩寺) 등 38개 능묘 및 진전과 관련된 사찰 51개가 기재됐다.
여기서는 왕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능침사, 승역(僧役)만 제공하는 사찰을 조포사로 구분했다. 또 이 조사보고서에 수록된 왕릉의 능침사는 모두 조선 전기의 것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왕릉에 제수와 물품, 노동력을 공급하는 조포사로 바뀌었다. 조포사의 왕릉 제사 보조 기능은 1908년에 대한제국의 국가적 제사가 폐지되면서 중단되었다. 한편 왕릉이 아닌 원(園)이나 묘(墓)를 관리하는 사찰에는 어실(御室)이 설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정조가 생부 사도세자를 위해 화성 현륭원(顯隆園) 옆에 재궁으로 만든 용주사(龍珠寺)에는 위패를 봉안하고 재를 올리는 제각인 호성전(護聖殿)이 두어졌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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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慈壽仁壽兩院在宮掖之外。即先后之內願堂也。奉恩奉先兩寺。在陵寢之內。即先王之外願堂也。所以限內外者。亦男女有別故也。此非一朝一夕之剏。實是先王先后之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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