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남한산성 |
|---|---|
| 한자 | 南漢山城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벽암 각성, 도총섭, 승군, 승역 |
| 연도 | 1626년(인조 4) |
| 시대 | 조선 후기 |
| 공간 | 남한산(南漢山) |
| 관련장소 | 개원사(開元寺), 국청사(國淸寺), 남단사(南壇寺), 동림사(東林寺), 망월사(望月寺), 영원사(靈源寺), 옥정사(玉井寺), 장경사(長慶寺), 천주사(天柱寺), 한흥사(漢興寺) |
| 관련인물 | 벽암 각성(碧巖覺性) |
조선 후기에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의승군(義僧軍)과 승영(僧營) 사찰이 두어진 산성
남한산성은 일찍부터 서울의 방어 요새로 주목되다가 후금(後金)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인조 대인 1624년부터 1626년까지 축성이 이루어졌다. 이때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이 8도 도총섭(都摠攝)으로 임명되었고 승군(僧軍)이 동원되었다. 수어청(守禦廳) 소속으로 성 내에 승영 사찰이 조성되었고 승군이 지키면서 승역(僧役)이 제도적으로 활용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처음에 9개 사찰이 세워졌는데, 망월사(望月寺)와 옥정사(玉井寺)는 원래 있던 절을 중창했고 개원사(開元寺), 한흥사(漢興寺), 국청사(國淸寺), 장경사(長慶寺), 천주사(天柱寺), 남단사(南壇寺), 동림사(東林寺)는 새로 지었다. 이 중 개원사가 수사찰이자 치영(緇營)의 본사였고, 뒤에 영원사(靈源寺)가 세워져서 모두 10개가 되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성되고 승영(僧營)과 11개의 진호(鎭護) 사찰이 설치되었다. 3년 뒤인 1714년에 남·북한산성 의승군이 1년에 여섯 차례 교대로 입역하는 의승방번제(義僧防番制)가 시행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승군 138명이 상주했고, 매년 경기, 강원, 황해와 삼남 지방의 승려 356명이 여섯 차례 교대로 입역하며 산성 방비를 맡았다. 승군은 총섭 1인, 중군(中軍) 1인이 통솔했으며, 교련관(敎鍊官) 1명, 초관(哨官) 3명, 기패관(旗牌官) 1명이 배속되었다.
균역법(均役法) 시행(1750년) 후인 1756년(영조 32)에는 일반 양역(良役)에 비해 승역의 부담이 커져서 기존의 의승방번제를 폐지했다. 그 대신 각지 사찰에서 비용을 거두어 산성의 상주 승군에게 지급하는 의승방번전제(義僧防番錢制)로 바뀌었다. 1785년(정조 9)에는 잡역과 공물 부담이 커서 방번전을 내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승역을 지는 승려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방번전을 반감했다. 이후 1894년 갑오경장 때 남·북한산성 의승군과 도총섭 등의 제도가 폐지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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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祖朝徵師領緇 築南漢城 三年訖 賜報恩 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號并衣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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